배를 든든히 채우고 향한 것은 그 유명한 피렌체 대성당(Duomo di Firenze), 두오모다. 두오모는 이탈리아에선 주교좌성당을 의미한다는데, 보통 한국에서 두오모 하면 피렌체의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Cattedrale di Santa Maria del Fiore)과, 돔처럼 생긴 쿠폴라를 떠올린다.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 때문이다. ‘냉정과 열정사이’를 본 적 없는 나도 그렇게 피렌체의 이미지를 떠올렸으니, 본 사람들에게 영화의 영향력은 상상 이상일 듯했다. 줄을 길게 선 기억이 없는 것으로 봐, 이곳도 피렌체 카드 전용 출입구로 들어갔던 것 같다.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은 13세기 말 계획되어 14세기에 공사가 시작되고, 우여곡절을 거쳐 15세기 초에 완공되었다. 이 전에는 산타 레파라타 성당이 있었는데, 이 성당이 너무 오래되기도 했고, 성장하는 피렌체를 대표하기에는 부족해서 계획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100년 가까운 공사에도 아직 쿠폴라라고 하는 돔은 완성되지 않았다. 쿠폴라는 필리포 부루넬레스키(동유럽 사람 이름 같다..)에 의해 고안되어 설계·건축되었다. 그는 그때까지 전례 없던 방식을 사용했다. 이중 벽 구조의 팔각 벽 돔을 생각한 것인데, 판테온과는 다르게 콘크리트가 아닌 벽돌은 이용하여 쌓는 것으로 매우 독특하고 대담한 방식이었다고 한다(건축을 잘 모르니 이 설명은 여기까지). 돔 공사는 1420년 시작되어 1436년에 끝났다. 성당 공사는 돔 공사가 끝난 뒤에도 몇 년을 더 하여, 완전히 끝난 것은 1469년이라고 하니 150년이 넘게 걸린 대 공사였다.
두오모 돔에 천장 벽화
그래서일까? 두오모의 돔 쿠폴라에 오르는 것도 성베드로성당 돔에 오르는 것만큼 등산하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오래된 건물이고, 좁은 통로만 있기 때문에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와 같은 첨단(!?) 장비들이 있을 리 없다. 오직 좁은 계단을 멀미를 느낄 정도로 빙글빙글 돌아 올라가야 돔에 정상에 오를 수 있다. 하지만 오르고 나면 보이는 경치에서 만족감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역시 등산과 같다. 두오모 쿠폴라에 올라 피렌체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조토의 종탑
붉은 지붕의 피렌체
붉은 지붕으로 덥힌 피렌체는 아름다웠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 건물들이 크게 바뀌지 않은 것 같은 이 도시는 나에게 시간 여행자가 된 듯한 기분을 안겨줬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골목은 관광객으로 가득했지만, 젊은 미켈란젤로가 모른 척 관광객들 사이에 섞여 피렌체 시내를 돌아다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이지만, 거기까지 상상력이 미치자, ‘이탈리아어라도 좀 배워 올 걸..’이라는 이상한 후회마저 몰려왔다.
저 넘어 피렌체의 풍요를 가져다 준 비옥한 땅이 보인다.
피렌체 기차역 부분
사람들로 가득 찬 쿠폴라 꼭대기에서 혼자인 사람은 나 밖에 없어 보였다. 젊은 관광객 학생 무리, 연인들, 가족들 등등.. 전과 달리 그것이 내 외로움을 자극하지는 않았다. 아마 미켈란젤로를 만날 몽상 때문이었을까? 한 바퀴 돌며 도시를 둘러보고 사진도 찍고, 위에서 보는 빨간 지붕이 아쉬워 잘 안 찍는 셀카도 찍었다. 그런데 그걸 보는 한 관광객이 - 가족 단위로 온 관광객 중 어머니로 보이는 50대 초반의 여성, 친절은 주로 그런 여성이나, 남성이 베푼다. - 나에게 다가와 “사진 찍어 줄까?”라고 물었다. 난 조금 당황했지만 그런 호의를 물리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흔쾌히 고맙다고 했다. 이제 이 위에서 볼 것은 다 봤다. 다만 어제부터 오늘까지 계속 하늘에 구름이 가득한 것은 아쉬웠다. 햇살 가득하여, 환하게 빛나는 꽃의 도시 피렌체는 나에게 허락되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뭐 언제 흐린 날 올 일은 또 있겠는가? 관람을 마치고 내려가려니 더 피렌체를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이미 여기서 나 만큼 오래 있는 사람도 없을 만큼 시간을 보낸 후였다. 다시 계단을 타고 힘들게 내려왔다(원래 등산도 하산이 더 힘든 법이다). 내려오니 기다렸다는 듯 비가 내렸다. 방수가 되는 옷을 입고는 있었지만, 하늘은 더 많은 비를 내릴 듯 찌푸렸다. 결국 잠시 숙소를 들려 우산을 갖고 나오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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