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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cal Mystery Tour

이탈리아 4개 도시 여행기_피렌체_첫날_도시 둘러보기

 

나폴리를 떠나기 싫은 내 마음을 알아서 일까? 피렌체로 기차는 아니나 다를까 연착을 했다. 기차 번호도 바뀌었다. 원래 내 기차번호는 9936이었는데, 연착되면서 9932번으로 바뀐 것이다. 뭐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쉽게 알아차렸겠지만 눈치도 없고 이탈리아어는 아예 못하고 영어도 잘 못하는 나로서는 뭔가 이상하다는 눈치만 차렸을 뿐이다. 뭐 아무튼 뭔가 이상해서 기차표를 갖고 해당 열차회사 부스에 가서 물어보니 기차 번호가 바뀐 것과 타야할 플랫폼 등을 친절하고 자세하게 알려줬다. 만약 아무 생각 없이 원래 번호의 기차를 탔으면 난 예정에도 없는 시칠리아 여행을 할 뻔했다. 모르면 물어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기차 옆자리에는 인도계로 보이는 엄청 예쁜 여자가 앉아 있었다. ‘나에게도 이런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여성은 날 힐끔 보더니 이내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나에겐 행운(?)이였지만 그녀에겐 불행(?)이었던 것이다. 그녀 역시 멋진 이탈리아 남성과 로맨스를 꿈꿨을 것이 아닌가? 뭐 하지만 그것은 내가 알바 아니었고, 나 역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그녀는 로마에서 내렸는데 앉아 있을 땐 몰랐지만 키가 175cm는 되는 것 같았다. 그녀가 내린 후, 그녀가 앉았던 자리를 포함해 연속 세 자리에 이탈리아 젊은 남성 셋이 앉았다. 그들은 쉴 새 없이 수다를 떨었는데, 분명히 여러 번 포르노라는 단어가 들려 날 약간 당황케 했다. 그렇게 두 시간을 달려 피렌체에 도착했다. 나의 이탈리아 여행 세 번째 도시였다.

 

피렌체에 도착했다. 숙소는 역에서 가까운 한인 민박이었다. 숙소를 가기 전 먼저 관광 안내소를 찾았다. 경찰한테 물어보니 친절하게 알려준다. ‘망할 로마..’ ‘왜 로마는 불친절 했는가?’ 이 두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말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피렌체는 로마, 나폴리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가진 도시였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피렌체로 여행을 온 이탈리아 사람들도 많은 듯했다. 가방을 메고, 캐리어를 끌고 관광 안내소로 갔다. 내가 관광 안내소를 간 것은 피렌체 카드를 사기 위해서였다. 보통 피렌체 일정은 12일 정도, 길어야 34일 정도로 짠다고 하는데, 34일 일정이었고, 피렌체 카드는 처음 사용부터 72시간, 거의 34일 동안 사용이 가능했다. 그리고 72개 미술관과 대중교통수단(그래봐야 버스와 트램), 공용와이파이도 공짜로 쓸 수 있었다. 72유로라는 다소 비싼 가격이었지만 난 이것을 사기로 결정했다. 그냥 표 일일이 사기 귀찮아 사기로 한 것이지만, 이 선택은 피렌체 여행 최고의 선택이 됐다. 플라스틱으로 된 꽤 예쁜 카드와 관광객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듯한 지도가 든 목걸이를 주는데, 누가 봐도 관광객이다 싶은 목걸이는 안 차고 다녀도 그만이지만, 지도를 넣고 다니며 보기엔 나쁘지 않다. 아무튼 친절한 관광 안내소 직원의 안내로 피렌체 카드를 사고, 지도도 따로 얻었다(다시 생각나는 불친절한 로마..). 숙소에 도착한 것은 오후 3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피렌체 카드..(내 여행으로 비루해진 손가락은 모자이크 처리..)


이번 숙소는 로마와 같이 한인 민박이었다. 10년 넘게 이곳에서 민박을 운영 중이라고 했다. 한인 민박의 좋은 점은 지역의 교통편을 친절하게 알려준다는 점이다. 나에게 오늘 보려고 하는 곳을 물어보더니 몇 번 버스를 이용하면 되는지를 친절하게 알려줬다. 저녁시간은 오후 630분이니 맞춰 들어오라고 하기도 했다. 짐을 대충 정리하고 카메라만 챙겨 밖으로 나갔다. 꽃의 도시라는 피렌체부터는 여유 있는 여행을 하리라 마음가짐도 함께 챙겨 나왔다나의 마음을 이해라도 하듯 피렌체의 여행객들은 여유가 넘쳤다. 차도의 일부를 막아 사람들이 보다 쉽게 걸어 다닐 수 있도록 해 놓은 것은 걸음의 여유를 더했다. 피렌체는 엄청나게 볼 곳을 많은 도시였지만, 도시의 넓이는 로마나 나폴리에 비하면 아주 작은 편이었다.

 

차가 다니지 않던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 앞 도로


지도를 따라 잠깐 걸었는데 두오모로 잘 알려진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에 도착했다. 피렌체 카드를 사니 워낙 공짜인 곳이 많았다. 일단 사람 많은 두오모의 돔은 내일 보기로 하고 옆에 있는 종탑에 가기로 했다. 그런데 카드를 갖고 바로 입장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카드를 갖고 매표소에 가면 입장권으로 교환해 주는 시스템이었다. 난 매표소를 찾아 약간 헤맸지만 그래도 무사히 표를 바꾸고 종탑에 올랐다. 종탑에서 내려다 본 피렌체의 모습은 모르긴 몰라도 중세 그대로의 모습인 것 같았다. 종탑에서 내려와 이번엔 성당에 들어갔다. 성당은 무료입장이었지만, 무료입장인 것이 무색할 정도로 안에 볼 것이 많았다. 특히 초에 불을 붙여 밝히며 소원을 비는 곳은 우리나라에서 돌을 쌓으며 소원을 비는 것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어두운 성당 내부의 분위기와 함께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나도 초에 불을 붙이고 소원을 빌었다. 돔에 있는 천장화는 신비함 그 자체였다. 단테의 신곡이던 뭐든 책을 좀 읽고 중세의 기독교 세계관에 대해 알고 왔다만 정말 좋을 뻔 했다는 생각이 머리에 스쳐지나갔다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


종탑에서 바라본 성당 앞 거리의 모습



성당 안 소원을 비는 촛불 나무


성당 안 천장화의 모습


성당을 나와 잠시 걸으니 베키오 다리가 나왔다. 다리를 건너 피렌체를 가로지르는 아르노 강을 따라 다시 잠시 걸으니 피렌체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다는 미켈란젤로 언덕에 도착했다. 모두 오밀조밀 모여 있어 산책하듯 걸을 수 있었고, 천천히 쉬엄쉬엄 걸어 와서 언덕을 오리기 전까지는 그리 힘들다는 느낌도 없었다. 구름이 많이 껴 석양은 볼 수 없었음에도 미켈란젤로 언덕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사람이 모인 곳엔 어김없이 거리의 악사가 있었다. 그는 피렌체 시내가 모두 내려다보이는 이 언덕의 분위기와 너무 잘 어울리는 노래는 연주했는데, 워낙 잘 어울려 그의 노래는 원래부터 미켈란젤로 언덕에 있었던 것 같았다. 난 맥주를 한 캔 사서 자리를 잡고 그의 노래를 들으며 피렌체를 바라봤다. ‘미켈란젤로가 내려다보던 피렌체도 이런 모습이었을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피렌체가 새롭게 느껴졌다.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본 피렌체의 모습


미켈란젤로 언덕 위 악사의 모습


생각에 잠겨 있는데 갑자기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한 신혼부부가 촬영을 하려왔다. 중국인으로 보이는 이 부부는 이곳에서 사신들의 결혼을 기념하기로 한 것인데, 피렌체라는 도시가 꽤 낭만적인 곳이긴 했지만, 웨딩촬영을 올만한 것인지에 대해선 약간 의문이 생겼다. 하지만 사람들의 열렬한 성원은 충분히 신랑과 신부의 추억의 한 칸을 채우기에 충분했다. 그들의 웨딩촬영을 보고, 악사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민박집 주인이 알려준 버스를 타고 숙소로 왔다.

 

숙소에 오니 이미 저녁이 준비되어 있었다. 제육덮밥이었다. 이탈리아에 와서 처음 먹어보는 한식이었다. 분명 그리 매운 맛이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먹어보는 고춧가루는 매우 맵게 느껴졌다. 한식에 대한 그리움이 그리 많지 않을 줄 알았는데, 너무 맛있어 밥을 두 그릇이나 해치웠다. 민박집 6인실 남자 방은 나에게는 다행이지만, 집 주인에게는 불행으로 손님이 나 밖에 없었다. 난 들어오며 사온 맥주를 한 캔 마시고 하루 여정을 정리하며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