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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cal Mystery Tour

이탈리아 4개 도시 여행기_피렌체_둘째 날_아카데미아 미술관

숙소에 잠시 들려 휴식을 취하고 우산을 들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이번에 향한 곳은 아카데미아 미술관(Galleria dell’Accademia)이었다. 이 미술관은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것저것 다 보고, 숙소에서 휴식까지 하고 미술관으로 가니 이미 오후 4시가 넘었고, 입장을 위한 줄은 적어도 30m는 넘게 이어져있었다. 하지만 나에겐 피렌체 카드가 있었다. 아카데미아 미술관 역시 피렌체 카드를 위한 전용 출입구가 있었다. 난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당당히 기다리지 않고 미술관 안으로 들어갔다.

 

미술관에는 여러 회화 작품도 있었고, 미켈란젤로의 미완성 작이라고 전해지는 작품도 있었다. 수많은 석고 조각을 전시해 놓은 공간도 있었고 그곳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다른 미술관(바티칸이나 우피치)과 다르게 이 미술관의 주인공은 확실했다. 바로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이었다. 입장은 빨리 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미술관 안의 사람의 수가 적어지는 것은 아니다. 즉 미술관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그 사람들의 대부분은 다비드상 앞에 있었다. 미술관도 마치 다비드상을 위한 것처럼 구성되어 있었다.

 

다비드상은 피렌체에 있던 높이 5m가 넘는 대리석을 깎아 만든 작품이다. 이 엄청난 크기의 대리석의 조각은 탁월한 예술가의 손을 기다렸지만, 심지어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이 대리석의 조각을 거절했다고 하니 돌이 주는 무게감도 대단했을 것이다. 거인 같았던 메디치가를 몰아낸 피렌체 시민들은 미켈란젤로에게 이 돌로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다비드)을 조각해 줄 것을 요청했고, 공화파였던 그는 이를 허락하고 3년에 걸쳐(1501~1504) 이 조각을 완성한다. 작업 내내 작업을 보지 못하게 해달라는 것이 조건이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적장 골리앗의 목을 든 다윗을 생각했지만 그가 만든 다윗은 돌팔매를 들고 골리앗을 응시하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실제로 보니 다윗의 얼굴은 긴장으로 가득하고, 손의 핏줄은 잔뜩 부풀어있었다. 거인 골리앗과의 일전을 앞둔 다윗의 긴장과 단호함이 그대로 묻어났다. 명작이라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크기는 5.49m라고 하는데, 생각보다 훨씬 거대했다. 작은 소년 골리앗을 거대하게 만든 것도 아이러니였지만, 저 거대한 소년의 상이 주는 작은 소년이 느꼈음직한 긴장감은 신비롭기까지 했다.


다비드 상과 그 앞의 인파...

 

이 미술관의 특이한 점 가운데 하나는, 다비드상 앞에의 기념촬영 행진이었다. 이 행진은 남녀노소, 동서를 가리지 않고 이어졌다. 뭔가 나도 한 장 찍어야 할 것 같은 이상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결국 차례(!?)를 기다려 한 영어권 외국인에게 부탁하여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특이한 점 가운데 다른 하나는 다비드의 성기를 강조한 온갖 상품들이었다. 앞치마부터 브로마이드 심지어 마그넷까지, 그곳에서 만들 수 있는 모든 상품에 다윗의 성기는 디자인으로 들어갔다. 다비드상의 몸이 이상적 남성의 몸이라면, 그의 발기 전 성기모양 역시 이상적인 남성의 성기 모양이기 때문은 아닐까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인상 깊었던 석고 실..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 나와선 특별히 보고 싶은 곳을 정하지 않아 무작정 걸었다. 걷다보니 성당이 하나 나왔다. 산로렌조 성당(Basillica di San Lorenzo)이다. 이 성당은 메디치가문의 전용 성당이었다고 한다. 메디치 가문을 몰아낸 상징물을 보고 이 성당을 보자니 기분이 묘했다. 밖의 모습은 꽤나 투박해 보였는데 내부는 대조적으로 깔끔하고 화려하여 과연 메디치 가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당 의자에 앉아 다시 휴식을 취했다.



밖에서 보면 조금은 투박해 보이는 산 로렌조 성당의 외부




하지만 안에서 보면 제법 화려한 내부..


휴식을 취하니 다시 잡생각이 들었다. 다비드상에서 보여주듯, 그리고 미켈란젤로라는 한 인간이 보여주듯, 피렌체의 16세기는 르네상스 그 자체였다. 내가 있는 곳이 신의 세계에서 벗어나 자연의 원리를 탐구하고, 인간에 대한 새로운 고민이 시작된 곳이라는 생각이 드니 당시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를 어떻게 맞이하고, 준비하고, 살아갔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그리고 미켈란젤로가 자신신의 시대보다 1,000년은 더 오래전인 그리스-로마의 작품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지도 상상해 보았다. 비록 상상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지만..

 

오랜 여행으로 몸이 조금 지쳤는지, 아니면 오늘도 알게 모르게 많이 걸은 건지 다리가 아팠다. 석식 시간도 다 되어갔다. 마트에 들러 맥주 한 병을 사서 숙소로 갔다. 숙소에 가니 배낭여행 중인 두 명의 여학생이 새로운 식구로 와 있었고, 저녁으론 닭백숙이 준비되어 있었다. 조금은 어색하게 두 여학생과 대화를 나누며 저녁을 먹었다. 먹고 조금 쉬니 다시 힘이 났다. 밤거리를 돌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여학생 둘도 원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첫 만남에서 덥석 같이 나가자고 하기는 뭣해 그냥 혼자 밤거리로 나갔다. 그리고 이것은 작은 소동극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