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첫째 날
베네치아 산타루치아 역(Stazione di Venezia Santa Lucia)에서 내려 앞으로 나오면 바로 운하가 펼쳐진다. 물의 도시라는 인상이 강렬하다. 일단 내려서 몇 곳을 공짜로 볼 수 있는 베네치아 카드를 샀다. 그리고 거기서 멘붕이 왔다. 로마의 로마패스, 나폴리의 아르때카드, 피렌체의 피렌체 카드, 모두 카드와 지도를 같이 제공한다. 심지어 기념품으로 가져갈 수 있을 정도로 예쁘게 만들어 놨다. 하지만 베네치아에서는 A4용지에 프린트를 해서 줬다. 처음에는 영수증을 준 줄 알고, 다시 물어봤는데, 퉁명스럽게 그 종이가 맞다고 이야기 해 준다. 이미지가 좋을 리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수상버스인 바포레토를 72시간 동안 마음 것 탈 수 있는 티켓은 종이가 아니라 카드였다는 것 정도였다(그나마도 카지노 선전이 담겨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화장실 이용료였다. 그 야박했던 카프리에서도 화장실 사용료는 0.5유로였고, 그 외에도 대부분이 0.5유로였는데, 이곳은 무려 1.5유로..(물론 이후로 다른 공중화장실을 사용하지 않아 전부가 이런지는 알 수 없다) 갑자기 셰익스피어가 왜 베네치아 상인들을 악날하게 그렸는지 마음 속 깊이부터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산타루치아 역을 나오면 만나는 풍경
저 종이 쪼가리가 25.9유로 짜리, 왼쪽에 녹색 카드가 바포라토 이용권이다.
어찌 됐건 복잡한(?) 배 노선을 확인 한 후 수상버스를 타고 호텔로 향했다. 사실 베네치아는 내 여행에서 최고로 사치스럽게 보내기로 계획한 도시였다. 아는 분의 도움으로 숙소는 5성급 호텔을 저렴하게 잡았고, 여행에서 남은 돈도 여기서 다 쏟아 붓기로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지 못한 물가차이가 내 계획을 약간 흔들었고, 이미 피렌체까지 생각보다 여행경비를 많이 지출했다는 것이 내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이 만들었다.
숙소는 선착장 바로 앞에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숙소의 분위기는 나를 압도했다. 뭔가 정장이라도 입고 왔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유서 깊은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사용한다는 이 건물은 오래된 건물이 갖고 있는 특유의 분위기와 함께, 깨끗하고 편리한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간단한 절차를 마치고 내 짐을 들어주는 사람과 함께(이런 것도 처음이고) 방을 찾아 갔다. 방은 혼자 쓰기에는 너무 큰 침대가 들어서 있었고, 화장실+샤워실은 정말 지금까지 다닌 숙소의 방만했다. 아무튼 같이 온 분에게 팁을 주고, 일단 침대에 퍼질러 누웠다. ‘아. 이것이 제대로 된 침대구나!’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휴식을 취하고, 이곳을 위해 준비한, 최대한 깔끔한 옷으로 갈아 입었다. 지갑과 여권만 챙겨서 숙소를 나갔다.
빨간 건물을 중심으로 좌 우가 모두 호텔 건물이다.
호텔 로비의 모습. 오래된 건물의 고풍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혼자쓰기엔 너무나 컸던 침대. 실제로 항상 절반 정도만 사용했다.
방만큼 넓었던 욕실. 중간쯤 보이는 둥근 거울은 사람의 움직임에 맞춰 같이 움직인다.
걸어서 베네치아를 돌아다녔는데, 다른 도시에 비해 한국 사람이 많았다. 여기저기서 한국어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분명 이탈리아 사람들이 말하는 이탈리아어도 한국어로 들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어 한국어인가?’하고 돌아보면 이탈리아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 이제 한국에 돌아갈 때가 된 건가? 아니 몇 년씩 여행하는 사람도 있는데, 난 고작 열흘 남짓 갖고 이게 무슨 오버인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걸으며 본 베네치아는 운하가 있어 좀 색다른 느낌이 날 뿐, 겉의 건물들은 피렌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나중에 느낀 것이지만 내부는 조금 다르다). 그리고 관광객도 더 많고, 가면을 파는 상점은 아주 많다는 것도 차이라면 차이였다. 산타루치아역까지 걸어갔다, 다시 수상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배 안에서 찍은 운하. 수상버스(비포라토), 수상택시, 곤돌라 등이 다양하게 얽혀 있다.
숙소가 너무 좋아 나가기 싫었다. 한참을 쉬다, 저녁에 숙소 바로 옆 산마르코 광장으로 나갔다. 두칼레 궁, 산마르코 성당, 그 앞의 산 마르코 광장은 모두 내일 갈 곳이고, 공화국 베네치아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이 저녁의 광장은 북적이는 관광객도 모두 떠나고, 몇 몇의 연인, 그리고 나와 같은 여행자 몇 명, 그리고 물건을 파는 사람들만 남아 추억을 남기는 자리였다. 나도 그곳에서 맥주를 한 캔 사서 마시며 베네치아의 첫날밤을 자축했다. 숙소로 돌아오니 초콜렛하나가 놓여져 있었고, 암막 커튼이 쳐져 있었다. 편히 잘 자라고 하는 것 같았다. '언제 또 이런 호사를 누려보려나..' 이런 생각을 하며 침대에 누웠다. 잡생각 할 것도 없이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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