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를 떠나는 날이다. 내가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 가장 큰 실수를 한 것이 예매하게 10~12시 사이에 도시를 떠나는 일정을 짠 것이다. 딴에는 너무 늦지 않게 출발하여 아직 해가 있을 때 숙소를 찾아간다는 계산이었지만, 저 시간에 떠나면 떠나는 도시도, 새로 가는 도시도 제대로 보기 어렵다. 로마를 떠나며 그 사실을 깨달았지만 이미 도시 간 모든 기차표를 예매 해 둔 상황에서 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준비 없이 혼자 가는 여행’이 이번 여행의 일종의 컨셉이었는데 숙소와 기차표를 다 예약하고 가는 여행을 ‘철저하게 계획 된 여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예매한 기차시간 덕에 멀리 가진 못하고 로마에서 처음 들렸던 그곳, 바로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으로 향했다. 성베드로성당이라는 엄청난 성당을 봐서 처음 봤을 때만큼 규모로 놀라지는 않았지만, 처음 들렸던 곳이라 그런지 왠지 더 정감이 갔다. 사실 규모도 로마에 있으니 그저 그런(?) 규모로 보일지 모르지만, 산타마리아 마조레 성당은 한국에 이런 성당이 하나 있다면 매일 관광객으로 북새통을 치러야 할 만큼 규모 있고 아름다운 성당이다. 그곳 예배하는 공간에 잠시 앉아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신에게 잠시 기도했다. (예배하는 공간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지만, 기도할 사람만 출입할 수 있다. 나도 처음에는 재지 당할 뻔했으나, 앉아서 기도하려 하자 곧 내버려 두었다.)
숙소로 들어와 짐을 쌌다. 이 한인 게스트 하우스는 지인의 소개로 방문한 것인데, 그 인연 때문인지 이 게스트 하우스의 여자 사장님(!?)은 가는 나를 위해 한국식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었다. 로마에서 바로 전날까지 먹은 음식들 가운데 3유로짜리 조각피자가 가장 맛있던 나에겐 최고의 대접이었다. 샌드위치를 받아 들고 주인 부부와 인사를 하고 숙소를 나왔다.
숙소에서 기차역인 테르미니까지는 넉넉히 잡아도 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는데, 내가 나온 시간은 10시 반이었다. 기차 시간은 11시 25분인데.. 혼자 여행하는 사람의 조급함일까? 그냥 성격 급한 내 탓일까? 5분, 10분 연착되는 기차시간을 보며 내 스스로에게 질문을 끝없이 던지며 자책했다.
기차역에서 기다리는데 세 명의 동양 남성들이 나타났다. 일본인들이었다. 그들은 내가 일본말을 모른다는 확신 하에, ‘저 사람은 확실히 일본사람은 아니고.. 한국인일까? 중국인일까?’, ‘아마 한국사람 아닐까?, 중국 사람은 여행을 혼자 잘 안 다녀..’ 따위의 대화를 주고받았다. 저 세 명의 일본인을 보고 있자니, 어제 바티칸 미술관 입장을 기다리며 만난 세 명의 일본인 무리가 생각났다. 그들은 정말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심지어는 입장이 시작되고 미술관 안에 들어와서도 계속 떠들었다.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조용히 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자기네한테 하는 말인지도 모르고 계속 떠들었다. 결국 그 직원에 입에선 ‘맘마미아!’라는 감탄사가 나오고야 말았다. 처음으로 시끄럽고 눈치 없는 ‘어글리 재패니즈’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세 명의 일본인이 지나가고 나고 기차 시간이 다가오자 점차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폴리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 때문이었다. 여행 책자에도 나폴리는 ‘이탈리아에서 치안이 가장 좋지 않은 곳’이라고 써 놨고, 로마 숙소의 사장님도 ‘나폴리에 비하면 로마는 껌이죠’라는 식의 이야기를 했다. 로마에서도 들은 이야기 때문에 내내 소매치기에 대한 걱정을 하며 도시를 돌아다녔는데, 나폴리는 더 불안하기만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한 선배의 ‘나폴리는 졸라 낭만적인 도시’ 이야기는 나폴리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하기에 충분했다.
드디어 기차가 도착했다. 내가 탄 기차는 Italo라는 회사의 기차였는데, 와이파이도 무료인데다가, 상당히 깨끗하고 시설도 좋았다. 좌석마다 콘센트도 있어서 휴대폰 충전을 할 수도 있었다. 한국과 다른 것은 모두의 티켓을 일일이 검사한다는 것이었는데, 복도를 사이에 두고 앉았던 사람은 티켓이 없었는지 직원과 함께 어디로 사라졌다..;;
저들의 대화를 추측해보면 다음과 같다.
직원 : 헐.. 너 표 없네?
손님 : 아니.. 아까 있었는데.. 잠시만..
직원 : 잘 찾아봐..
손님 : (약 1분간 뒤적이다..) 아까 분명 있었는데..
직원 : 아.. 씨ㅂ.. 이.. 일단 따라나와..
손님 : (불쌍한 얼굴을 하며..) 아냐.. 분명 있었다고..
직원 : 나오라고!
손님 : 응.. 짐 좀 챙기고..
저 실랑이가 지난 간 후, 창밖을 바라보니 익숙한 듯 다른 풍경이 지나갔다. 생각보다 풍요로워 보이는 이탈리아의 농촌은 이곳이 농업 생산력을 바탕으로 국가가 발전했던 지역이란 사실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내가 탔던 기차의 내부
나의 종착지는 나폴리였지만, 기차의 종착지는 나폴리가 아니어서 잠을 잘 수 없었다. 할 일도 없고 로마 여행을 되돌아보는데, 로마의 성당은 기회가 되면 어머니와도 함께 와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는 사이 나폴리가 가까워왔다. 여기서 피식 웃음이 난 것은 이탈리아 사람들 때문이다. 그들은 나폴리에 다 와간다는 방송이 나오자마자 짐을 챙겨 출입구로 향했는데, 그 모습이 마치 한국 사람들 같았다. 저들이 부산하게 짐을 챙겨 출입구로 가자, 처음 기차를 탄 나도 정신없이 짐을 추스르고 출입구로 갔는데, 기차는 그 이후에도 5분을 넘게 더 달렸다. 난 기다리며 피식 웃고 말았다. 기차는 도착했고, 문이 열렸다. 나폴리다.
나폴리에 내리자 테르미니 역과 비슷한 구조를 한 나폴리 중앙역(Napoli Centrale)의 구조에 피식 웃음이 났다. 하지만 곧 책에서 보고, 로마에서 들은 나폴리의 악명(!?) 덕에 다시 긴장을 좀 했다. 우선 찾은 곳은 관광 안내센터였다. 역시 역에 있는 경찰에게 물어보려했는데, 테르미니역보다 훨씬 찾기 쉬운 곳에 위치하여 묻지 않고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관광 안내소를 찾아간 이유는 ‘캄파냐 아르떼카드’를 구입하기 위해서였다. 이 카드는 ‘로마 패스’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데, 캄파냐 지역의 교통과 몇 곳의 입장료가 무료 혹은 할인된다.
관광안내소에 들어가자 한 여직원이 환하게 웃으며 나를 맞이했다. 나의 못하는 영어도 웃으며 들어주고 친절하게 차근차근 ‘캄파냐 아르떼카드’의 구입을 도왔으며, 관광 안내지도도 챙겨줬다. 묻지 않았는데 숙소가 어딘지 먼저 물어보곤 가는 곳도 알려줬다. 로마에선 찾기 힘든 친절과 호의였다.
역 밖으로 나오자 왜 나폴리에 대한 악명이 생겨났는지 알 것 같았다. 외국인 노동자도 많았고, 대도시답게 조금 더럽고, 시끌벅적했다. 좋게 말하면 활기차고, 나쁘게 말하면 수상한 분의기의 도시가 나폴리였다. 이런 이미지는 숙소 근처에 갈수록 더했다. 숙소는 역에서 도보로 10여분 거리에 위치했는데, 근처에 가자 엄청난 좌판 시장이 벌어지고 있었고, 덩치 좋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가득 그곳을 메우고 있었다. 나 같은 작은 동양인은 정말 나 혼자여서 당장 눈에 띠었는데, 누가 봐도 여행객 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니 더욱 여러 사람의 주목을 받았다. 낯선 곳에서 이렇게까지 주목 받으니 쑥스럽고 약간은 무섭기까지 했는데, 갑자기 한 남자가 날 불렀다.
남자 : 어이~
나 : 나...나?
남자 : 응. 너 여행왔지?
나 : (여행객이면 해코지 하려하나? 아니라고 할까? 근데 누가 봐도 여행잔걸?) 으.. 응.. 맞아..
남자 : 너 Hostel Mancini 찾아 온 거 아냐?
나 : (얼레?) 응 맞는데.
남자 : 만시니 바로 저기야~ 즐거운 여행 해~
나 : 어.. 고마워~
호스텔 만시니가 있던 골목. 지저분하고 심지어 좀 무서워도 보이지만 적어도 내가 만난 사람들은 모두 친절했다.
그랬다. 내 나폴리 숙소인 호스텔 만시니는 그 주변에서 젊은 관광객이 많이 오기로 유명한 곳이었고, 많은 젊은이들이 그 근처에서 어리버리 만시니를 찾았던 것이다. 여러 인종이 만들어 내는 풍경은 다소 낯설고 이국적이었지만, 그들은 결코 나쁜 사람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수많은 관광객을 일상적으로 대하는 로마 사람들보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훨씬 외부인들에게 친절하고, 상냥했다. 난 그렇게 쉽게 내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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