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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cal Mystery Tour

이탈리아 4개 도시 여행기_로마_둘째 날_카피톨리노 박물관과 로마의 야경

바티칸시티를 나와 향한 곳은 카피톨리노 박물관이었다. 어제 가고자 했으나 박물관이 문을 닫아 볼 수 없었던 바로 그곳이다. 거기서 꼭 보고 싶었던 것은 마르쿠스 아우델리우스의 청동기마상이었다. 철학가였지만 그를 대표하는 유적으로 남은 것이 전쟁을 상징하는 원기둥과 기마상 뿐인 마르쿠스 아우델리우스에 대해서는 앞에서도 충분히 설명했다. 이 기마상은 복제품이 카피톨리노 광장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기독교의 시대 수많은 황제들의 조각상과 청동상이 사라졌지만, 이 기마상은 기독교에서 영웅으로 추앙받는 콘스탄티누스의 기마상으로 잘못 알려져 파괴를 면했다고 한다. 782년부터는 교황의 거처 앞에 세워져 있었는데, 1475년 바티칸의 한 사서에 의해 이것이 콘스탄티누스의 기마상이 아닌 것이 밝혀졌다. 하지만 이미 시대는 기독교 영웅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고 마구잡이로 파괴하던 시대는 지난 후였다. 1538년 이 기마상은 교황 파울루스 3세에 의해 카피톨리니 언덕으로 옮겨진다. 아마 카피톨리노 광장을 설계하던 미켈란젤로의 설계가 이미 완성된 이후였을 것이다.


 카피톨리노 박물관 안에 있는 마르쿠스 아우델리우스의 청동 기마상


이 기마상은 마르쿠스 아우델리우스의 생전 모습을 그대로 재현 한 듯 섬세했다. 곱슬머리를 한 헤어스타일, 풍부한 턱수염, 철학자 황제로의 마지막 자존심인 듯 갑옷보다 토가를 걸친 복장, 사람들을 위무하는 듯한 손동작과 무표정해 보이는 듯 단호한 표정은 이것이 거의 2,000년 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기마상 앞에는 기마상이 살아 남알 수 있는 오해의 여지를 제공해준 콘스탄티누스의 엄청 큰 얼굴 모양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전시 담당자가 자신의 센스를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라는 조심스러운 추측마저 들었다.

 

그 옆에는 사자가 말을 사냥하는 조각상이 있었다. 이 조각상이 눈길을 끈 것은 사실성 때문이었다. 사자는 말을 이빨로 물고, 발톱으로 찍으며 사냥했는데 이빨과 발톱이 닿는 모든 부분이 모두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고통과 두려움으로 가득 찬 말의 얼굴은 마치 내 바로 앞에서 사자의 사냥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이렇게 세밀하게 동물과 인간을 관찰하던 시대가 지나고 다시 이런 시대가 오기까지 500년 이상이 걸렸다는 것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실감났던 사자의 말 사냥 조각


다음으론 이제 흔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리스-로마의 조각들을 감상했다. 그중 눈을 끈 것은 한 여성의 나체상이었다. 지금 생각하는 이상형의 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에 생각이 미친 것이다. 흔히 여성의 미에 대한 기준은 시대마다 달라졌다고 알려졌지만, 1,500년이 넘은 것이 확실한 이 조각상은 당시의 미의 기준과 현재의 미의 기준이 적어도 여성을 보는 관점에선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러고 생각해보니 라오콘 군상의 라오콘 역시 현재 남성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신체를 보여주고 있었으며, 헤라클레스 등 신화 속 인물들의 몸도 마찬가지였다. 중세가 인간의 신체에 대한 관심이 좀 적었으니 중세 사람들의 인간 신체의 이상향은 뭔지 알 수 없으나, 달랐다 하더라도 르네상스 이후 미의 기준 역시 다시 태어난 것이 분명해 보였다. 적어도 서양에선 말이다.


나를 상념에 빠지게했던 조각


대강 보고 해 저무는 로마를 보려고 했으나, 볼 것이 너무 많았다. 힘들게 2시간 가량을 미친 듯 둘러보고 있었는데, 지하로 내려가 둘러보다 기가 막힌 곳을 발견했다. 바로 포로 로마노가 보이는 장소였다. 카피톨리니 언덕은 포로 로마노 끝에 위치하고 있었고, 카피톨리노 박물관은 그 언덕 위에 위치했다. 그래서 그곳에선 포로 로마노가 멋지게 내려다 보였다. 내가 도착했을 시간은 5시가 다 된 시간이었는데, 이미 관람시간이 끝난 후였는지 포로 로마노에는 한 사람의 관광객도 보이지 않았다. 난 어제와 다른 느낌으로 포로 로마노를 내려다 봤다. 두 시간의 힘든 관람의 선물처럼 신비로워 보이기까지하는 텅빈 포로 로마노를 바라보며 맞이하는 달콤한 휴식이었다. 하지만 휴식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는데 곧 견학을 온 듯한 아이들이 나를 발견한 것이다. 아이들은 혼자 있는 동양 남자를 발견하곤 신기한 듯 자기들끼리 몇 마디 나누더니 내가 있는 곳으로 괴성을 뛰어오기 시작했다. 곧이어 선생님이 아이들을 말리긴 했지만, 조용한 휴식을 이미 깨진 이후였고, 괴성을 들은 다른 아이들과 관광객들도 이곳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들도 포로 로마노의 관경이 신기했는지 연신 사진을 찍었고, 난 그곳을 슬쩍 떠났다


카피톨리노 박물관에서 바라본 텅빈 포로 로마노


카피톨리노 박물관을 나와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야경을 보기 위한 곳이었다. 로마의 서쪽에 위치한 그곳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 뭔가 적어두긴 한 것 같은데, 메모에도 발견되지 않는다. 아마 또 다른 이유는 그곳이 그닥 인상 깊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아무튼 트램을 타고 지도에 보이는 곳 가까운데서 대충 내려 걷기 시작했다. 내린 곳은 한국으로 따지면 연남동과 비슷한 느낌의 동네였다. 작은 술집들이 즐비했고, 어둠을 즐기러 나온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어둠과 활기찬 젊은이들은 뭔가 묘하게 흥분과 두려움을 가져다준다. 생각해보면 젊은이들이 갖고 있는 사랑, 정렬, 열정 이런 것은 곧 섹스, 폭력, 광기로 나타나곤 한다. 그리고 그것은 뭐 어느 정도 당연한 신의 섭리가 아니겠는가. 거기에 말도 안 통하는 키 작고 뚱뚱한 동양 남자가 그 자리에서 아름다운 여성과의 섹스를 꿈꾸기보다 그들의 폭력과 광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겠는가? 어렵게 말했지만 잘못해서 맞지 않으면 다행이다란 생각이 들었다는 얘기다.


아무튼 목적지를 향해 난 계속 걸었는데, 이제 정말 힘들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시작해서 제대로 쉰 시간이 없는데다, 마지막 야경을 보겠다고 향한 곳은 높은 곳이었으니 말이다. 체력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정말 야경을 봐야하나?’라는 생각과 회의감이 밀려왔지만 이미 반쯤 걸어 올라와 포기 할 수도 없었다. 나중엔 내가 가고 있는 곳이 내가 목적했던 곳이었는지도 분명치 않았다. 그리고 기어코 난 올라왔다. 하지만 로마의 야경은 생각보다 아름답진 않았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이탈리아는 전기 수입해서 쓰기 때문에 조도(照度)의 제한이 있다고 한다.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힘들게 올라온 것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이었는지 계속 보다보니 나름 운치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로마의 야경


야경을 보고, 충분히 앉아 쉬고 내려오는데, 뭔가 새로운 길이 보였다. 내려가는-물론 올라올 수도 있는-지름길이었다. ‘..’라는 탄성이 절로 나왔지만 이미 후회해도 늦었다. 내려가기라도 빨리 내려갈 수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내려와 버스를 탔다. 숙소로 향하는 길에 마트에서 3유로짜리 조각피자와 콜라 하나를 샀는데, 그것이 내가 그때까지 이탈리아에서 먹은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다. 맥주도 한 병 사서 숙소로 들어왔다. 샤워를 하고 편히 누워서 찍은 사진을 정리하고, 맥주를 마시며 하루를 돌아보며 여행 중 남긴 메모를 정리했다. ‘로마에서의 마지막 밤이구나..’란 생각이 들었고, 이어 로마를 며칠 더 볼 껄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새로운 도시에 대한 궁금증도 더해졌기에 아쉬움은 살짝 미뤄 두기로 했다. 그리고 다시 침대에 누웠는데, 오랜만에 아무 잡념도 없이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