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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ve Peace A Chace

역사학에 대한 모독_역사 교과서 국정화

지지난 총선 때 일이다. 

난 친한 한 친구에게 특정 정당에 투표할 것을 권했다.
친구는 왜 자기가 그 정당에 투표를 해야하는 지 설명하라고 했고, 난 설명했다.


총선이 끝나고 다시 그 친구를 만났는데 친구는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가족 모두를 그 정당에 투표하라고 설득했다."고 했다.
끝에는 "결과가 나오고 그 정당 지지율이 너무 낮아 가족들에게 욕 좀 먹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그리고 지난 총선 전 난 다시 그 친구를 만났다.
지난 번 '욕 좀 먹었다는 발언' 때문에, 더이상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러니 오히려 그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이번엔 왜 나한테 어디 찍으라고 말 안 하냐?"
난 대답 했다.
"지난 번 네가 '욕 좀 먹었다'고 해서 미안해서 말 못하겠다."
그러자 친구는 이렇게 얘기 했다.
"난 먹고 살기 바빠 정치에 신경을 많이 쓰지 못한다. 꼼꼼히 신문을 읽을 시간도 없어,
독서? 그런건 해본지도 오래 됐고, 이제 하려해도 잘 안 된다. 그런데 넌 그걸 하는 사람이잖아. 독서하고, 생각하고, 공부하고..그러니 너희 같은 사람들(공부하는 사람들)은 나 같은 사람들에게 판단할 수 있게 뭐라도 알려줘야 할 의무가 있는 거 아니야?" 


난 뒷통수를 맞은 느낌이었고, 곧 내가 좋은 친구를 뒀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바로 내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해 친구에게 사과했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들은 것 가운데 최고로 어떤 집단에 대한 전문성을 존중하는 발언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전문가 집단이 얼마나 인정 받지 못하는가는 또 다른 문제로 치자.
하지만 성숙한 사회에서 특정한 업무는 그것에 대해 특정하게 공부한 전문가 집단의 의견을 존중한다.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역사학은 아주 좋은 취미거리일 뿐만 아니라,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역사는 좋은 취미거리여야 하며, 대중과 밀접해야한다.


다만 그 취미거리를 제공해야하는 학문으로서의 역사학은 그렇게 쉽고 좋은 취미는 아니다.

한문으로부터 시작해서 각종 외국어로 되어 있는 사료를 본인이 읽고 정리할 능력은 기본이거니와,
그것을 논리적인 글로 써서 많은 사람들에게 그 합당함을 인정받아야 한다. 


당연히 그 글을 쓰는 과정에선 학자 개개인의 가치관이 투영되며 그 과정에서 논쟁이 발생한다.
그리고 역사학은 이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현재에 이르렀다.


사료를 재대로 볼 줄 모르거나, 정리할 줄 모르는 사람들, 그리고 글이 논리적이지 못한 사람들은
가끔 논쟁을 피하거나, 자신들의 약점을 지적하는 사람들을 '식민사학의 후예'정도로 취급하며 논쟁의 지점을 돌려버린다.(누구라고 특정인을 거론하는 것은 피하겠다.


아무튼
많은 제대로 된 역사학자들은 나와 다른 의견이 있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내 의견을 공고히 하기 위해 더 많은 사료를 보고, 정리하고, 분석한다.
그들 가운데 누구도 내 의견을 고집하기 위해, 다른 의견을 가르치면 안 된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것이 비록 소수설이라고 해도 말이다.
역사학은 그런 것이니까.


그런데 이런 역사학을 너무 쉽게 정부 여당은 이념투쟁으로 만들어 버렸다.
항상 나와 다른 의견이 있음을 존중하는 역사학에 '올바른'이란 딱지를 붙혔다.
자연히 나머지 의견을 틀린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내 의견만 올바른 것이었다면, 역사학은 지금까지 올 수 없었다.
왕실이 만든 조선왕조실록이 있는데, 조선사를 왜 지금 다시 쓴단 말인가?


이런 지경이니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도 쉽게 역사학자들을 비판하고 나선다.
여당 대표는 역사 학계의 90%가 좌파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양성을 인정하며, 논쟁하며 성장한 역사 학계 전체를 
사료를 해석해 본 적도 없는 것 같고, 
역사학 논쟁이 뭔지도 잘 모르는 것 같으며, 
심지어는 역사학에 다양성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도 모르는 것 같은 사람이 쉽게 평가해 버린 것이다.


여당 대표가 이런 상황이니 국정화에 찬성하는 교수들 가운데는
"역사학 전공자가 몇 명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는 말까지 나온다.
자신의 의견을 공고히 하기위해 연구의 연구를 거듭하고 있는 '전문가'인 역사가들은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그들이야 말로 학문보다 이념이 중요하며, 권력이 중요한 사람들일테니까.


학생들에게 하나의 역사를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이야기니 할 필요도 없지만,

그 와중에 역사학은 정부 여당과 몇몇 이념병자들에 의해 모독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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