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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cal Mystery Tour

이탈리아 4개 도시 여행기_나폴리_둘째 날_폼페이

기차에서 내리자 다행히 비는 그쳐있었다. 폼페이 유적은 폼페이 스카비역에서 나와 왼쪽으로 조금만 가면 있었다. 폼페이 유적 입구에서 표를 샀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입장권에 0.00유로라고 적힌 것을 보니 아르떼카드를 사용하여 무료로 입장권으로 교환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입구에서 교환한 표를 넣고 안으로 들어가는데 사람들이 무언가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난 다시 입구로 가서 지도를 얻을 수 있냐고 물어보니 웃으며 지도를 하나 줬다.

 

폼페이의 모습은 한편으로 상상이상이고, 한편으로는 상상 이하였다. 도시의 모습이나 정비된 모습은 기대했던 것보다 잘 되어 있었던 것은 상상 이상이었지만, 곳곳이 수리로 인해 막혀있었고, 휴식공간이 많지 않은 것은 그리 매우 불편했다. 뭐 아무튼 난 폼페이에 쉬러 온 것이 아니라 일종에 답사를 온 것이기 때문에 지도를 보며 동선을 생각 한 후 보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폼페이는 로마시대 중소도시였던 만큼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자세히 유적의 하나하나를 기억하지도 못하고, 그것을 설명할 필요도 없다고 느껴져 하지 않겠지만 폼페이라는 도시에 대한 설명은 하고 가야겠다.

 

로마 남쪽의 중소도시였던 폼페이는 서기 79824일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인해 화산재에 덥혀 사라진 도시다. 폼페이 최후의 날에 대한 기록은 소 플리니우스의 기록에 잘 남아 있다. 화산폭발은 오후 1시부터 시작됐다. 폭발은 전에 없이 강력했고 곧 화산재가 하늘을 뒤덮었다. 처음엔 작은 알갱이들이 하늘에서 떨어졌지만 점차 큰 돌덩이들이 하늘에서 떨어져 다치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했다. 폭발이 더 강력해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위험을 직감하고 피신하기 시작했다. 당시 근처에 해군제독으로 있던 대 플리니우스도 위험을 직감한 사람 가운데 한명이었다. 그는 모든 배를 이끌고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폼페이로 향했고 구조작업이 시작됐다. 저녁 8시가 넘으며 도시는 거의 대부분 재로 덥혔다. 아직 탈출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운명은 다음날 새벽 1시쯤 다시 시작한 거대한 폭발로 결정됐다. 그 폭발로 폼페이는 완전히 땅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구조작업과 위험을 직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시에서 탈출에 성공한 후였다(단 구조를 지휘했던 대 플리니우스는 화산재 중독으로 사망했다). 당시 폼페이 인구는 6,000~20,000명 사이로 추정되는데, 사망자는 2,000명 정도로 추정되니 엄청난 비극 속에서도 비교적 많은 사람이 탈출한 셈이다. 그 후 폼페이는 완전히 잊혀졌다. 폼페이가 다시 역사에 등장한 것은 16세기 중반의 일인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발굴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당시 베수비오 화산으로 멸망한 도시가 어디 폼페이 하나였겠는가? 주변의 여러 도시도 폼페이와 함께 멸망했다. 폼페이는 비교적 낮게 땅에 묻혔기 때문에 일찍 발굴되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대략 이런 역사를 곱씹으며 유적을 둘러보고 있었다. 한 무리의 한국인 투어 팀을 만났다. ‘역시 이곳이 인기가 있구나..’라고 생각하는 찰라 또 한 무리의 한국인 투어 팀이 지나갔다. 사실 로마에서도 한국인 투어 팀을 많이 만났는데, 여기서도 여러 팀을 만나고 나니 로마인들은 후손 뿐 아니라 외국인도 먹여 살리는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론 한 시대에 엄청난 비극이 또 한 시대에는 구경거리라는 생각도 들었는데, 나도 그 구경꾼의 일원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곧 머릿속 잡념을 지우기로 하고 다시 길을 걸었다.

 

천년 이상 땅속에 묻혀 있던 유적을 발굴한 결과, 폼페이 유적에서는 한그루의 나무도 찾을 수 없었다. 다행이 3월이고, 날도 쌀쌀해서 굳이 그늘을 찾아갈 필요는 없겠지만, 여름에는 정말 탈수에 걸릴 위험이 있는 곳이라 생각했다. 여행안내서의 불친절하고 부족한 설명 때문에 고생을 좀 했다. 들어올 때 입구에서 받은 안내지도는 이탈리아어와 약간의 영어로 되어 있어 내가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냥 걸어 다니며, 대강 안내판을 읽자라고 마음먹었는데, 안내판도 없었다. 뭐 하지만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곳들은 내가 가진 두 지도에서 대충 찾을 수 있었기 때문에, (최소한 나에겐) 불친절한 지도 둘을 봐가며 돌아다녔다.

 

원형경기장, 반원형의 소극장과 대극장, 신전, 목욕탕, 각종 상점, 그리고 집창촌, 일반 가정집까지 폼페이는 작지만 도시로서 갖춰야할 모든 것을 갖춘 도시였다. 난 이곳저곳을 기웃기웃 돌아다녔다.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을 따라가기도 했고, 사람들이 없을 만한 곳을 찾아가기도 했다. 그러다 어떤 때는 막힌 도로를 끝까지 갔다 돌아오는 경우도 생겼는데, 돌아오는 도중 그 잘못된 길로 가는 사람들에게 여기 길 없어라고 말해줘 고마워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뭐 정말 별것 아니었지만 뭔가 이상하게 뿌듯한 생각이 들다가, 다시 민망해졌다. 콜로세움에서와 같이 2,000여 년 전 사람들을 떠올리고 싶었지만, 쉽게 되지는 않았다. 다만 2,000년 전 로마제국이 이런 작은 도시에까지 원형 경기장 및 극장을 갖출 정도로 부가 넘쳤다는 사실 정도는 느껴졌다. 아쉬웠던 다른 하나는 곧 닥칠 성수기를 맞이하여 대대적인 보수를 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안에 들어갈 수 없는 곳이 많았다는 점이다. 뭐 물론 문화재 보호 차원일 수도 있다.




폼페이 입장을 위한 입장권


목욕탕


원형극장 파노라마


들어갈 때 쯤 찍은 폼페이


폼페이 유적 이모저모..

특히 마지막 사진에 보이는 산은 베수비오산으로 폼페이를 집어 삼킨 바로 그 산이다. 


역시 폼페이 이모저모..


 폼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