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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beatles 2006. 3. 1. 02:42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1.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것은 옳은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의 하나가 바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란 책에 담겨있다. 살인이 정당하지 않음은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공감하고 인정한다. 그런데 국가가 합법적으로 저지르는 살인인 ‘사형’에 관해서는 아직 그 의견이 분분한 것이 사실이다.


2.

  인간은 변한다. 물론 나도 변한다. 나는 예전에 신한국당(지금의 한나라당)을 지지했었고, 그 다음에는 민주당과 열린 우리당을 지지했었다. 그리고 지금은 민주 노동당을 지지한다. 나는 한때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대체 복무를 반대했지만 이제는 찬성한다. 나는 한때 이라크 파병을 찬성했지만 이제는 반대한다. 사형제에서도 예전에는 찬성했고 지금은 반대한다. 예전에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 이제는 그른것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나는 지금 나는 나의 생각이 또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다. 다만 지금은 지금 믿는 신념대로 행동하는 것이 옳다는 것, 그것만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3.

  법은 공정하지 않다. 최소한 대한민국에서는 그렇다. 모든 신체 건강한 남성은 군대에 가야하지만, 돈 있고, 백 있는 사람은 군대에 가지 않거나, 좋은 보직으로 간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물론 이것이 모두 합법적으로 처리되는 것은 아니다. 대기업 총수들이 뇌물수수나 횡령죄를 지어도 대부분 ‘국가에 경제 상황’이나 ‘국가 경제에 기여한 바를 참조’해서 집행유해로 풀려난다. 돈 없는 서민은 빵을 훔치면 절도죄로 징역을 산다.

  그 공정하지 않은 법 아래에서 간첩죄를 뒤집어쓰고, 혹은 국가전복죄를 뒤집어쓰고 형장에 이슬로 사라진 사람은 멀지 않은 우리 역사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그들이 사형을 당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오랜 기간 복역한 끝에 자신들의 무죄가 밝혀졌다면, 그들은 그들의 오랜 시간을 보상받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형은 그 모든 기회를 앗아갔다.


4.

  아주 적은 사례이기는 하지만 법도 실수를 한다. 우리는 범인으로 몰려서 감옥에 있다가, 진범이 밝혀져 풀려난 사례를 종종 볼 수 있다. 그런데 만약 그 사람이 억울하게 사형을 당했다면? 그 경우가 아무리 극소수의 사례라고 해도 국가는 또 사법부는 그 사람을 법의 이름으로 죽인 것이 된다. 과연 사형은 옳은가?


5.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는 사실 과장된 설정이 많이 있다. 억울하게 죄를 모두 뒤집어쓴, 돈도 없고, 백도 없는, 결손 가정에서 폭력을 당하며 살아온 사형수, 그러면서 나중에 회계하고 새사람이 된 사형수는 그가 소설에 쓴 표현에 의하면 ‘진부’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이 소설에 공감을 느낀 것은 아마 그 한명의 사형수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대변하고 있고, 또 언제든 가능한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수많은 아동들이 아직도 폭력에 시달리며, 사회는 그들을 돌봐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이 지은 죄를 모두 그들의 잘못으로만 돌린다. 마치 성폭력 피해자를 가해자처럼 다루듯이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저들이 죄를 짓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은 아니다. 저들 중에도 분명 명문대로 진학하여 성공한 사람들도 있고, 성공한 사업가도 있다. 문제는 그들이 극소수라는 점이고 더 심각한 것은 지배층이나 보수 언론들은 마치 그들을 영웅대접하며 그들을 부각하며, 그들과 같은 환경에 처한 많은 사람들을 소외시킨다는 점이다. 횡설수설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우리가 사는 사회도 소외된 자들이 저지르는 범죄에 대한 책임을 분명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6.

  어떤 사형수의 말이 이 책에 있었다. ‘나를 사형시킴으로서 나의 살인이 완성된다.’라는.. 섬뜩한 말이다. 결국 ‘ 가 사람을 죽이는 것이나, 국가가 나를 죽이는 것이나 본질적으로는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살인이 아니냐? 그러니 다를 것도 없다.’라는 것이 아닌가? 최소한 나는 그렇게 받아드렸다.


7.

  어떤 이들은 말한다. ‘날로 증가하는 흉악범죄를 막기 위해서라도 사형제도는 존속되어야 한다.’라고. 그런데 사형제도가 폐지된 나라에서 흉악범죄가 더 늘었는가? 확실한 통계를 인용할 수 없어 아쉽지만, 내가 전에 본 신문지상의 통계로는 ‘아니요’였다. 또 책에서 인용한 예 - 소매치기를 줄이기 위해 소매치기범을 공개처형했는데, 그 자리에 사람이 몰리자 소매치기가 더 늘어났다고 -를 보아도 사형은 그리 효과적인 범죄예방책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사형은 다만 죽은 자에 대한 복수일 뿐이다.


8.

  어떤 연쇄살인범이 20명을 죽였다고 하자. 그 살인범을 죽인다고 해서 그 20명이 살아 돌아오는가? 단순 계산으로만 쳐도 1:20은 사형수에게는 만족할만한 수치가 아닌가! 차라리 그 살인범을 교화시켜 진심으로 반성하게하고, 또 사회에 봉사하게 한다면(석방시키자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것이 더 옳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9.

  소설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인간이 예측할 수 있고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죽음이 사형이다’라는.. 인간은 어떠한 생명도 만들어낼 수 없다. 그러니 함부로 사람을 죽일 권리도 없다. 그것이 살인이건 사형이건. 그들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그들을 죽여야 한다면, 결국 우리는 계속된 살인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왜 많은 나라들이 사형제를 폐지하고 있겠는가?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은 어떠한 형태로라도 옳은 것인가?


인간의 변화 가능성도 참회의 가능성도 모두 닫아 놓아버릴 것인가?

 

 

한번 생각해 볼 문제이다..

 

사람은 누구나 변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