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al Mystery Tour

스페인 여행기-세고비야(7월 20일)

beatles 2017. 8. 13. 15:52



그냥 첫 사진이 중요한 듯하여..


어제 기절하는 덕분에 또 새벽에 일어났다. 스페인은 영국보다 서쪽에 위치하지만 유럽 표준시를 사용한다. 즉 영국보다도 한 시간이 빠르다. 해가 훨씬 늦게 뜨고 늦게 질 수밖에 없다. 인간의 생활은 시간과 상관없이 태양의 주기에 따라 움직이는 것 같다. 일출이 늦은 마드리드의 새벽은 어느 대도시 보다 고요하다. 어제와 같이 간단하게 시리얼을 먹고 밖으로 나왔다. 세고비아행 버스 터미널은 어제와 다른 곳이었지만 지하철을 타고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었다. 6시에 출발하는(도대체 얼마나 일찍 일어난 것인가..) 첫 차를 무사히 탔다. 여기는 530분이 되니 표 파는 곳이 문을 열었다.



마드리드의 새벽

 

버스에 타서 잠을 청하려 하는데 쉬이 잠이 오지 않는다. 자연히 밖의 경치로 시선이 갔다. 톨레도로 갈 때에는 넓은 평원이 보였는데, 세고비아로 향하는 풍경에는 산이 눈에 들어왔다. 고지에 위치한 도시로 간다는 것이 느껴졌다. 세고비아 도착할 시간이 다가오자 기구들이 눈에 띄었다. 기구가 있는 곳에 세고비아가 있을까? 타려면 얼마의 비용이 들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세고비아에 도착했다.

 

너무 일찍 도착하니 역시 할 일이 없다. 차가 막히지 않아 1시간 10분 남짓 걸렸다. 간단하게 커피를 한 잔 마시고 하루의 일정을 짰다. 커피는 역시 싸다. 어제는 정신없이 돌아만 다닌 것 같았다. 오늘은 조금 생각하는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아마 힘들지 않을까? 혼자 앉아 별 생각을 다 해 본다. 커피를 마시고 나와 조금 걸으니 멀리 수도교가 보인다. 그제야 세고비아라는 실감이 난다



아침에 커피마시던 곳. 그리고 세고비아의 수도교



세고비아의 수도교는 트라야누스 황제(재위 98117) 때 건설되었으며 1906년까지 고지대에 물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위키피디아). 무려 1800년 가까이 사용된 것이니 그 내구성이 어떤지는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다. 수도교의 나이로도 알 수 있지만 도시의 나이도 짐작할 수 있다. 트라야누스 당시에 만들어진 도시가 아니라면 이 도시는 그보다 훨씬 일찍 만들어졌을 것이다. 이후 이슬람이 영토를 확대했을 때는 이슬람 영토였으며, 다시 수복한 이후에는 잠시 카스티야 왕국의 수도이기도 했다.


조금 걸어 올라가니 수도교 촬영 포인트(!?)가 나왔다. 세고비아에서 직은 수도교 사진은 모두 이곳에서 찍은 것이었다. 나도 질 수 없어(?) 사진을 왕창 찍었다. 떠오르는 햇볕은 석양만큼 강렬해서 어떻게 사진을 찍어야 할지 모르게 만들었지만(사진 못 찍은 핑계를 이렇게..), 그 모습만큼은 사진에 담을 수 없을 만큼의 장관이었다. 그렇게 사진을 찍고 도심으로 향했다







촬영포인트에서 찍은 수도교


사료를 먹는 고양이 무리를 보니 마리가 떠올랐다. 잘 있겠지? 아직도 아침이라 골몰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이제 막 상점을 여는 사람들의 분주함만이 거리를 메웠다. 톨레도보다 더 중세 같은 거리를 걷자 대성당(Catedral)이 나왔다. ‘하고 작은 감탄사가 나도 모르게 나왔다. 톨레도의 그것이 수직의 강인함을 보여준다면, 세고비아의 대성당은 곡선이 만드는 우아함으로 사람을 압도했다. 그러면서도 누구든 품어줄 것 같이 따뜻한 느낌도 있었다. ‘대성당 중의 귀부인이라는 말은 괜한 것이 아니었다. 조금 이따 둘러볼 것을 혼자 기약하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른 아침의 세고비아 거리와 대성당


조금 더 길을 가니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신데렐라의 모델이 되었다고 하는 알카사르가 나왔다. 그런데 보이는 쪽에선 그 전체의 모습이 다 보이지 않았다. 일단 앉아 내 다리에 휴식을 주었다. 수도교의 도시답게 곳곳에 수도가 잘 갖춰져 있어 목을 축일 수 있었다. 마침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있어 알카사르 앞에서 사진을 한 장 찍어달라고 해서 기념촬영도 마쳤다. 시간이 있으니 밑으로 내려가 보기로 했다. 알카사르를 조금 더 잘 보고 싶었다. 잘 보이는 아랫마을로 내려가면서 벌써 약간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계단이 너무 많았다. 맙소사. 막상 내려와 걸으니 알카사르의 모습이 잘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 이 모습이 보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 혼자 왔으니 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조금 걸으니 다시 수도가 있어 목을 축였다. 조금 더 걸으니 베라쿠르즈 성당(Iglesia de la Vera Cruz)이 나왔다. 멀리서 봤을 땐 폐허처럼 보였지만 가까이 와서 보니 꽤 당당한 성당이었다. 다만 그늘 한 점 없는 평야에 홀로 있어 덥게 느껴지긴 했다.

 

더 걸어가니 알카사르의 앞모습이 보이는 곳에 이르렀다. 10시가 다가오자 기온은 금방 올라갔다. 덥다고 느끼고 있는데, 유치원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이 소풍 비슷한 것을 걸어서 가고 있었다. ‘나도 더운데싶은 날씨였지만 아이들은 신나 보였다. 아이들은 내가 가는 곳과 같은 방향으로 갔다. 아이들은 나보다 먼저가 계단에 앉아 선생님의 설명을 들었고, 나는 아이들이 앉은 계단 가장자리로 간신히 올라갔다. 알카사르의 모습이 보였다. 계곡을 끼고 절벽 위에 세워진 성은 아름답기도 했지만 그야말로 천연의 요새였다. 알카사르는 나를 보호해야했고, 권력을 보여주기도 해야 했던 두 가지 필요가 만나 만들어낸 건축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세고비아의 알카사르는 아름답고, 처절했다.

 

10시가 다가왔다. 다시 올라가야했다. 새로운 길을 찾아 올라갈까도 생각했지만 모험은 어제 톨레도의 아침으로 충분했다. 왔던 길을 고스라니 밟아 돌아갔다. 역시나 오르막은 힘들었다. 오르막에 가기 전 한국인 관광객을 태운 차를 만났다. 그들은 잠시 주차장에 내려 알카사르를 보고는 다시 차에 탑승하여 세고비아로 올라가려는 듯했다. 잠시 저 차를 얻어 탈까 싶기도 했지만 일단 가능하지도 않을 것 같았고, 조금만 걸으면 금방 올라가는 거리이기도 했다



밑에 마을로 내려가 본 알카사르. 위에서 본 것 보다 훨씬 아름다운 건물이다.


올라가서 알카사르 입장권과 오디오 가이드를 빌렸다. 내부는 한 때의 수도, 그리고 수도 가운데 중심이 되는 성이었던 것을 보여주듯 화려한 작품들과 조각, 그리고 전시품으로 가득했다. 한 무리의 단체 관람객이 들어왔다. 한국인들이었다. 모국어에 잠시 반가웠다. 그런데, 가이드의 설명이 좀 이상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서양사의 문외한인 내가 들어도 로마사는 물론 유럽의 중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하는 설명이었다. 물론 몇몇 가이드들의 설명은 지나가며 들어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도 있었지만, 이번엔 정말 아니다 싶었다. 저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세고비아의 알카사르를 둘러보는 관광객들이 조금 불쌍하게 느껴졌다. 알카사르를 속속히 둘러 본 후 다시 표를 사서 이번엔 탑으로 향했다. 탑에서 보는 세고비아 구 시가지의 모습은 따로 표를 산 것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알카사르의 내부와 탑에서 본 세고비아 전경


내려와 아까 보기로 기약한 대성당으로 향했다. 대성당에서 탑을 보려면 가이드투어와 꼭 함께 해야 하는 듯했다. 일단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가이드투어를 신청했다. 심지어 스페인어였다!! 성당은 내부도 우아했다. 파이프 오르간부터 조각들까지 어느 하나 허투루 만든 것이 없어보였다. 한 나라의 수도였던 곳의 대성당다웠다.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의외로 악보였다. 파이프오르간의 악보로 보였는데, 뭔가 굉장히 신기했다. 그것이 인상 깊은 이유라면 좀 그렇긴 하지만 아무튼 그랬다.

 

시간이 되어 가이드와 함께 탑에 올랐다. 오르면서 계속해서 뭔가 설명을 해주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냥 옆에 있는 안내문 가운데 영문 안내문을 간신히 짐작하며 읽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무슨 영상도 보고 하면서 올라갔다. 인상 깊은 장면은 중간쯤에 나왔다. 한 관람객이 가이드에게 가서 자신과, 자신과 같이 온 동반자에게 청각장애가 있음을 알렸다. 가이드는 이후 모든 초점을 그들에게 맞췄다. 그들이 잘 보도록 입모양을 분명히 했으며 그들의 앞에서 설명을 했다. 다른 관람객들도 그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배려했다.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이 우아한 성당을 더욱 기품 있게 만들었다.

 

탑에 정상에 도착했다. 붉은 세고비아 시내. 그리고 그 밖으로 펼쳐진 평야. 평야에서의 농업 생산이 이곳을 수도이게 만들었을 것이었다. 성벽이 보였다. 이곳은 성벽으로 둘러 쌓인 도시였다. 톨레도도 마찬가지였다. 중세는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시간이었다. 농기계가 도입되어 토지가 계간되고, 새로운 농법이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여전히 전쟁은 흔했다. 농업은 풍요를 보장했지만, 전쟁은 모든 것을 앗아갔다. 그 두 모습을 세고비아의 풍경이 너무 잘 보여줬다고 하면 너무 지나친 비약일까?



세고비아 대성당과 탑 위에서 본 세고비아 풍경


점심은 마드리드로 돌아가 먹기로 하고 바로 시내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1시가 넘었다. 간단히 간식을 사서 먹고 버스에 올랐다. 마드리드로 가는 길은 보다 멀게 느껴졌는데, 아침에는 없던 교통체증 때문이었다. 도착해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어제 사고 싶었던 신발을 샀다. 숙소에 돌아가 씻었는데, 씻으며 생각하니 한나절 사이에 1,000개의 계단을 오르내렸다. 씻고 금방 잠이 들었다.

 

밤이 되어 눈을 떴는데 10시다. 마드리드의 밤을 그냥 보낼 수 없어 밖으로 나와 가고 싶었던 재즈클럽을 갔는데 이미 만원이라고 한다. 제기랄. 자느라 하지 못하는 것이 생기다니. 할 수 없이 숙소 근처의 조그마한 바에 가서 모히또를 한 잔 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숙소에 돌아오니 젊은 학생들끼리 술을 마시고 있는데, 나에겐 15살 가까이 차이나는 사람들 노는 곳 끼어들 용기도 없었고, 그러면 안 되는 것 같아 조용히 방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