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4개 도시 여행기_베네치아_둘째 날_산마르코광장 주변
베네치아_둘째 날_두칼레 궁, 산마르코 성당, 코에르 미술관 등
암막커튼의 좋은 점은 햇빛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고, 나쁜 점은 햇빛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슨 헛소리냐 하면, 그 덕에 푹 잤지만, 늦잠을 잤다는 것이다. 뭐 어차피 시간은 많으니 상관은 없었지만.. 아침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옷을 입고 숙소를 떠났다. 팁을 테이블에 놓고 “Thank you”라고 적어 놓고 말이다.
처음 간 곳은 바로 옆의 두칼레 궁(Palazzo Ducale)이다. 이곳은 베네치아 공화국의 총독이 사용하던 곳이다. 공화국이었던 베네치아는 독재자가 나타나는 것을 경계했다. 그래서 독제자의 탄생을 막기 위해 아주 복잡한 정치 시스템을 고안했다. 뭐 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원로원도 있고, 각종 위원회 등이 있었고, 총독을 뽑는 투표 역시 아주 복잡하게 이루어졌다. 비록 왕이 아닌 총독이었지만, 그가 사는 궁전은 화려했다. 베네치아는 무역으로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한 나라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 화려한 궁전에서 외교 사신을 접대하고, 자신들의 부와 국력을 과시했다.
베네치아의 부는 대부분 동-서양간의 중계무역이었다. 특히 동양의 귀한 향신료는 아주 비싼 값에 유럽 전역으로 팔려나갔다. 무역의 중심이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건너간 이후에도 유리산업, 레이스 산업 등으로 베네치아의 부는 한동안 유지됐다. 그런 역사적 맥락 때문일까? 두칼레 궁의 장식은 나폴리, 피렌체, 로마와는 달랐다. 동양적인 화려함이 묻어나는 듯했다. 특히 금색으로 칠한 천장은 유독 터키와 같은 그들이 느끼는 ‘아시아’의 화려함이 묻어 있었다.
두칼레궁의 내부. 금테두리로 둘러싸인 그림들이 인상적이다. 옆에 있는 의자들도 독특한 베네치아의 정치구조가 반영된 것이다.
한편 궁의 구조 역시 특이했는데, 복잡한 정치 시스템이 반영되어 그에 맞는 구조를 택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넓은 홀 가운데 하나에는 역다 총독들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었다. 그 초상은 누구에게 총독을 물려받았고, 누구에게 이어졌는지를 보여주는데, 그래서 각 총독마다 두 장의 그림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그 가운데 한명의 초상은 까만 칠이 되어 있었다. 궁금해 찾아보니 역모로 인해 처형되었다고 한다. ‘총독이 역모라니..’ 의아하긴 했지만 왕국이 아닌 공화국이니 생길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싶었다.
일반적인 총독의 이취임 그림(위)과 역모로 처형당한 총독의 그림(아래)
궁에는 특이하게 감옥도 있었다. 감옥은 다른 곳과 다르게 운하와 가까운 습한 곳에 위치했다. ‘아까 그 총독도 이런 감옥에서 사형집행을 기다렸을까?’ 뭐 별 생각이 다 들었다. 특이한 것은 죄수들이 낙서한 그림들도 전시하고 있는 것이었는데, 그 낙서들이 어떻게 남아 있었는지가 조금 의심스럽긴 했지만, 수준으로 보아 일부로 ‘죄수의 낙서’라고 만들었을 것 같진 않았다. 감옥까지 돌아보니 얼추 두칼레 궁은 전부 둘러 본 듯했다. 어찌 됐건 A4용지로 뽑아준 몇 가지 무료입장은 다 써야 했다. 일단 더 돌아보지 않고 나가기로 결정했다.
죄수의 작품이라고 남아 있는 그림. 내 기억엔 이것이 가장 잘 그린 것이어서 찍었다.
밖으로 나가서 향한 곳은 산마르코 성당이었다. 산마르코 성당은 베네치아의 상인들이 이집트에서 성 마르코의 유해를 가져온 후, 성 마르코를 공화국의 수호성인으로 삼고 그것을 기념하여 세웠다. 역시 두칼레 궁과 같이 동서양의 양식이 다 섞여 있는 것 같았다. 특이한 것은 정문 위에 있는 청동으로 만든 네 마리 말과 밑에 있는 무장들인데, 청동마상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후 비잔틴 제국시기의 유물을 약탈해 온 것이 확실하며, 아마 무장들의 상 역시 양식으로 보아 마찬가지의 역사를 갖고 있은 것으로 추정되어 당시 베네치아의 국력을 보여준다는 것이다(베네치아는 4차 십자군원정 당시 십자군을 조정하여 목표를 콘스탄티노플로 바꾸고 그곳을 점령하고 약탈했다).
산마르코 성당. 자세히 보면 문 위에 네 마리의 청동 말이 보인다.
성당의 내부는 화려했다. 무료라 그런지(유료인 구역도 있다) 관광객도 많았다. 일단 대강만 둘러보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어서였다. 바로 산마르코 광장에 있는 카페 플로리안(Caffe Florian). 1720년에 문을 열었다고 하는 이 카페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이다. 카사노바를 비롯하여, 괴테, 찰스 디킨스 등도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 그냥 허영심에라도 한 번 가보고 싶었다. 일단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일단 놀란 것은 앞에 낡은 간판이었다. 1720년부터 한 번도 교체하지 않았을 것 같은(물론 그럴리 없겠지만) 낡은 간판은 이 카페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고풍스러운 인테리어와 종업원들의 복장 역시 인상 깊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인상 깊은 것은 가격이었다. 피렌체에 ‘un cafe’에서 0.9유로 하던 아메리카노 한잔이 여기선 무려 9유로였다. 10배.. 역사와 전통, 그리고 분위기를 파는 곳이긴 하지만 만원이 넘는 커피는 살짝 적응이 되지 않았다. 뭐 하지만 좋은 자리에 앉아 좋은 서비스를 받으며 아침에 둘러본 두칼레 궁과 산마르코 성당의 인상을 노트에 정리하다 보니 비싼 커피 값은 잠시 잊혀졌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 됐다는 카페 플로리안의 입구와 내부.
카페 플로리안에서 일어나 다시 산마르코 광장으로 나갔다. 이번에 갈 곳도 역시 광장 안에 있는 코레르 미술관(Museo Correr)이었다. 베네치아의 귀족이었던 테오도로코레(Teodoro Correr)가 수집한 작품들을 모아둔 곳이라고 한다. 어마어마한 곳들을 이미 본 후기 때문에 엄청난 감동까진 없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더라도, 이곳은 한 명의 귀족이 모았다고 하기엔 엄청난 작품들이 많았다. 베네치아 귀족들이 교역으로 얼마나 많은 부를 축적했는지도 엿볼 수 있었고.. 두칼레 궁 못지않은 화려함을 갖고 있었으며(규모야 차이가 있지만), 이집트 유적부터 당대의 그림까지 가리지 않고 수집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갑자기 이렇게 다른 나라 유적을 모으는 행위가 제국주의의 전초적인 모습인가? 하는 생각도 조금 들긴 했다.
코레르 미술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그림 두 점.
아마도 하나는 새와 사람의 에로틱한 모습 때문이었던 것 같고,
나머지 하나는 베네치아 상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기 때문인 것 같다.
코레르 미술관을 나와서 바로 간 곳은 종탑이다. 베네치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아닐까 싶다. 입장료는 8유로로 비싸고(망할 상인의 도시!), 사람도 많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게 되어 있는데, 걸어 올라가면 반 값 할인! 뭐 이런 거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파 속에서 순서를 기다려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위에서 본 베네치아는 역시 피렌체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다만 바다가 있다는 것이 모든 것을 달라 보이게 만들었다. 종탑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고, 또 베네치아를 감상하고 산마르코광장으로 내려왔다. 광장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장면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모이를 손에 들고 비둘기들을 자기 몸에 앉히는 행위였다. 워낙 낯설어 멀찍이서 구경하기만 했다. 뭐 아무튼. 그것만 제외하면 산마르코광장은 베네치아의 가장 유명한 관광지임을 뽐내기라도 하듯, 수많은 관광객을 흡수하고 토해냈다.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배가 고팠다. 밥부터 먹어야 했다.
종탑에서 바라본 베네치아의 모습
갈매기와, 비둘기 그리고 인간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산마르코 광장 오른쪽 높은 것이 종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