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al Mystery Tour

이탈리아 4개 도시 여행기_로마_첫째 날_ 오후_Part2

beatles 2015. 5. 17. 21:53

다음 목적지를 찾아가는데 특이한 구조물이 보였다. 큰 원기둥이었다. 바로 마르쿠스 아우델리우스 원기둥이었다. 명상록이란 책을 남길 정도로 철학에 빠져 철인(哲人) 황제라는 별명을 가졌던 아우델리우스였지만, 그의 치세는 전쟁으로 가득 찼다. 소위 말하는 이민족들의 연쇄적 이동이 시작되는 시점이었던 것이다. 그는 그의 진지하고 차분한 성격에 알맞게 진지하게 전투에 임했지만, 전투는 그의 성격에 맞지 않았다. 그의 명상록은 전쟁의 모습을 끔찍하고 잔인하게 서술하고 있다. 스토아 철학자였던 그에게 전쟁은 끔찍한 것이었다. 게르만족의 전술과 전략도 한층 발달해 있었다. 교류를 통해 로마의 전술과 전략을 습득한 것이다. 전투와 전쟁 모두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결국 전투를 이겨나갔고, 전쟁에서도 거의 승리를 목전에 두었다. 하지만 전쟁을 마무리하지 못한 상태로 고향인 로마와 멀리 떨어진 게르만 전선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전투만이 아니라 행정도 차분하고 진지하게 처리했으며, ‘공공의 선을 앞세우는 스토아학파의 철학을 실천하여, 자신의 개인 사제를 털어 국가 재정의 부족을 메우기도 했다. 앞의 원기둥은 바로 그 철학자 황제의 전쟁 업적을 기록한 유물이었다. 이런 방식은 아우델리우스의 전전 황제인 트라야누스가 처음 개발했는데, 그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유물을 남겼다. 원래는 원기둥뿐만 아니라, 계단이 있어 걸어 올라가며 기둥의 전쟁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나중에 나오겠지만 그가 남긴 또 다른 예술품은 기마상인데, 철인 황제가 남긴 예술품이 모두 전쟁과 관련된 것이라는 점은 그의 시대가 어떠했는가를 짐작케 해 준다.



계속 걸었다. 걸으며 생각했다. 난 왜 이렇게 열심히 걷는가? 이런 의문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생각해서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로마는 서울에 비하면 작은 도시이지만, 전체를 걸어서 관람하기에는 크다. 그럼에도 계속 걷게 되는 것은 유적지들이 약간의 거리를 두고 계속 나오기 때문이다. 그만큼 로마는 볼 것이 많다.' 이렇게라도 생각해야 마음에 작으나마 안식을 얻을 수 있었다.

 

걸어서 도착한 곳은 바로 영화 로마의 휴일로 유명한 스페인 광장이었다. 스페인 대사관이 있어 스페인 광장으로 이름 지어진 이 광장은 영화로 굉장히 유명해졌지만, 내가 갔을 당시에는 주변이 공사 중이기도 했고, 사람도 엄청 많아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실망했다. 하지만 고전 로맨틱 영화의 영향 때문인지 연인들을 가장 많이 본 곳도 바로 이곳이었던 것 같다. 여기저기서 당당하게 애정행각을 벌이는 연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많이도 걸었고 피로도 몰려왔다. 스페인 광장 계단에는 마침 누워 있는 사람들도 종종 볼 수 있었는데 햇살도 좋겠다, ‘나도 누워서 눈 좀 붙이자라는 생각이 들어, 계단에 눕고 가지고 다니던 지도로 얼굴을 가리고 눈을 붙였다. 잠이 스르르 몰려왔다. 그렇게 10분이나 잤을까? 사람들이 더 많이 오는지 주변이 소란스러웠다. 난 일어나 지하철로 향했다. 나에겐 로마패스가 있었다. 어차피 무료였다.





로마는 땅 속이 모두 유적이라 지하철을 개발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단 두 개의 노선만 존재한다. 난 해외에서 지하철을 타는 첫 경험을 약간 설렘을 안고 시도했는데, 의외로 한국과 너무 비슷해서 싱거웠다. 다만 악명 높은 소매치기 때문에 조금 긴장은 했다. 하지만 그곳에 타고 있는 평범한 로마시민들을 모두 잠재적 범죄자 취급한다는 생각이 들자 그들은 전혀 몰랐겠지만 괜히 조금 미안해도 졌고, 마음도 편해졌다.


이후 향한 곳은 트라야누스 포룸이었다. 그곳은 아까 사기꾼에게 당한 그곳이기도 했다. 그 사기꾼에게 신경을 쓰는 바람에 트라야누스 포룸을 보지 못한 것이다. 5현제 가운데 한 명인 트라야누스는 포로로마노 옆에 엄청나게 큰 자신의 포룸을 만들었다. 그리고 아우구스투스 이후 처음으로 전쟁을 통해 영토를 넓힌 자기의 업적을 기념하는 원기둥을 만들었다. 앞서 본 아우델리우스 원기둥에 모델이 되었던 바로 그것이다. 트라야누스는 2회에 걸친 다키아 원정으로 지금의 루마니아와 체코에 해당하는 다키아 지역을 로마제국으로 편입시켰다. 바로 이 트라야누스 당시에 영토가 로마제국 최대의 영토가 된다. 그리고 그 전쟁의 모습을 담은 것이 트라야누스 원기둥이다. 그는 전쟁으로 대표되는 외치(外治)뿐만 아니라, 내정도 원만하게 처리했다. 원로원과도 협력적인 관계를 유지했고, 제국 각지에 대대적인 토목공사를 실시해 인프라를 구축했다. 그래서 당시 로마인들은 그에게 완벽한 황제(Optimus Princep)라는 칭호를 줬다. 전쟁을 했다하면 이기고, 당시의 최고 권력기관이자 종종 야당의 역할도 했던 원로원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고, 제국에 필요한 시설들을 건축했으니 당시 로마제국의 시민들에게 그는 정말 완벽한 황제였을지도 모른다.

 



이제 숙소로 향했다. 첫날부터 너무 무리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숙소로 가는 길에 라떼를 한잔 시켜 마셨는데, 라떼가 커피 음료 가운데 가장 비쌌다. 제길.. 뭐 그래도 여유롭게 앉아 가본 곳을 되새기며 글을 쓰며 휴식을 취했다. 직원이 예쁘고 친절한 것도 마음에 안식을 가져다 줬다.

 

숙소로 들어가 잠시 쉬다 야경을 보러 나왔다. 이번엔 숙소 주인이 알려준 버스를 타고 야경을 보러 갔다. 성천사성이라고 불리는 카스텔 세인트안젤로(Castel san’t Angelo)’였다. 나중에 안 이야기지만 이탈리아는 전기를 수입해 사용하기 때문에 야간에 쓸 때 없는 조명을 쓰지 않고, 환하게 불을 밝히지도 않는다. 내가 찾아간 성천사성도 테베레강가에서 은은한 불빛만을 밝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의 공터와 다리 등 곳곳에서, 서로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만한 거리를 지키며 연주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연주는 은은한 불빛을 한 로마의 밤과 너무 잘 어울렸다. 그렇게 길을 걷는데 익숙한 음악소리가 들렸다. 비틀즈였다. 한 연주자가 비틀즈의 노래들을 연이어 연주했다. 난 내가 낮선 곳에 있다는 사실도 있고 멍하니 연주를 듣고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판테온 앞에서와는 다르게 바로 성의를 표시했다.



 숙소로 다시 들어오니 꿈만 같았다. 너무 많이 돌아다녔다. 난 지치지 않고 답사를 다니던 그 20대 청년이 아니었다. 하지만 보고 싶은 것들을 꼽아보니, 내일도 긴 하루가 될 것 같았다. 씻고, 맥주 한 캔을 사서 마시고, 침대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