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4개 도시 여행기_출발, 그리고 로마
집을 나섰다. 뭔가 불안했다. 어머니의 말처럼 ‘수능 날 수험표를 놓고 갈 정도’의 정신머리를 갖고 있는 난, 여행을 출발하는 날까지 와서 무엇인가 미비한 서류 때문에 비행기를 못 타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짐을 다시 정리하고, 여권을 챙기고, 미리 예매한 티켓과 그 복사본을 확인했다. 그리고 샤워를 하고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서려는 데 역시 마음에 걸리는 것은 마리였다. 마리는 내가 한동안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하아..’ 긴 한숨을 쉬고 ‘다녀올게’란 인사를 하고, 굳게 마음을 먹고 집을 나섰다. 나서자마자 마리를 맡아 줄 후배에게 전화를 해서 ‘다시 한 번 잘 부탁한다.’고 말했더니, 후배는 웃으며 ‘걱정말고 잘 다녀오시라’고 답했다. 그 말에 조금 마음이 놓였다.
인천공항까지 가기위해 내가 택한 것은 공항철도였다. 4호선을 타고 서울역에서 내려 갈아타면 됐는데, 국적기의 경우 출국심사 및 티켓팅, 수화물 선적도 가능했다. 그곳에서 직행(할인) 티켓을 사서 영수증을 갖고 항공사 창구로 가면 바로 비행기 티켓을 주는데, 그것을 갖고 가면 출입국 심사가 가능했다. 직행 기차는 지정좌석제로 운영되었고, 시간도 40여분으로 짧았으며, 요금도 6,900원(할인)으로 공항리무진버스에 비하면 저렴했다. 티켓을 받을 때 좌석을 지정하는데 난 조금이라도 편하게 가기 위해 비상구 좌석 자리를 요구했다.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예전에 제주도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중국이 세상을 곧 지배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 큰 인천공항의 절반이 중국인들로 가득 찬 느낌이었다. 공항에서 멀티어뎁터를 빌리고(통신사 창구에서 공짜로 빌려준다) 점심을 먹으러 갔다. 와퍼를 먹으려고 버거킹에 갔는데, 곧 후회했다. 사람이 너무 많았다. 자리가 없어 눈치보고, 좁게 먹고,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당하는 느낌이었다. 차라리 더 비싼 돈을 주고 더 맛없는 곳에서 먹더라도 느긋하게 밥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국장으로 향했다. 출국 수속을 마쳤기 때문에, 출국 수속의 긴 대열에 합류하지 않아도 됐다. 난 항공사 승무원들과 다른 출입구로 빠르게 들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시간이 남았다. 출국 할 27번 게이트도 가까웠다. 할 일이 없어 여기저기 전화하고, 면세점을 기웃거렸다. 그러다 결국 앉아 사람들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보고 있는데 문득 이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가는 이유가 궁금했다. 모두 다른 이야기들이 있을 터였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화나 연극으로 만들어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탑승을 하게 될 27번 게이트>
비행기를 탔다.
로마까지 가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도보, 자동차, 기차, 배, 비행기 등등. 이중 육로로 이동하는 교통수단은 남북관계로 이용하기가 매우 어렵다. 거기에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들 수밖에 없다. 아마 기업 CEO라고 해도 육로를 이용해 로마를 가려면 사직서를 제출해야 할 것이다(뭐 재벌 총수나 그 가족이라면 무슨 상관이겠냐 만은). 해로 역시 마찬가지인데, 모진 풍랑과 해적의 위협 오랜 시간까지 감안하면 외부의 풍경을 즐긴다는 것 말고는 쉽지 않은 선택이다. 그래서 대부분은 비행기를 이용한다. 서울-부산의 KTX 요금이 45,000원 정도 에 2시간 30분이 소요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인천-로마가 1,000,000원대 초반이라는 가격과 12시간 남짓 소요된다는 사실은 매우 효율적이라면 효율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나와 같이 이코노미 클래스를 이용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12시간 동안 ‘사육’되는 것을 견뎌야 하는 고난이 기다리고 있다. 좁은 좌석, 내 신체 리듬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식사 시간, 생각보다 계속 이어지는 비행기 소음, 문득 몰려오는 추락의 공포 등등은 좁은 우리, 정해진 사료 배급시간, 순간순간 도살의 위험 속에 있는 가축과 크게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불만도 승무원들의 모습을 보면 조금은 참을 수 있게 된다. 활동하기 불편한 치마 유니폼을 입고, 이 비행기에서 가장 활동적인 임무를 수행해야하는 승무원들은, 종종 100만원 초반의 금액으로 그들의 인격까지 샀다고 착각하는 탑승객의 주인 행세까지 ‘웃으며’ 받아야 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사육 당하는 내 처지는 오히려 나아보일 정도였다. ‘왜 항공 승무원이 선호 직종일까?’란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마련된 영화를 찾아봤다. 인터스텔라, 버드맨, 이미테이션 게임 등 비교적 최신작들이 많이 준비되어 있었다. 출발 전 한 친구가 옆자리에 여자가 앉으면 잘 해보라고 했는데, 3·3·3 배열로 된 비행기 좌석은, 나 같이 혼자 가는 사람이 한 자리를 앉으면 남는 두 자리에는 커플이 앉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타고야 알았다. ‘다음부터는 중간 자리를 달라고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 것으로 옆자리 여자와의 로맨스에 대한 기대를 대신했다.
사실 비행기 안에 있으면 닫힌 공간 어디에 머무르고 있을 뿐, 이동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돈과 시간을 들여 육로로 갔다면, 변화하는 풍경, 날씨, 사람들의 생활 모습 등을 보면서 갔을 것이다. 난 그것을 시간과 바꿨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번만이 아니라 언제나 그래왔던 것 같다.
로마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오후 4시 10분 비행기를 탔는데, 8시간 느린 시차로 아직도 같은 날 저녁 8시 40분이었다. 비행기 탑승구에서 나오니 마치 나만 혼자 여행 온 사람 같았다. 혼자인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일행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입국장으로 가는 열차를 탔다.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하기 위해 너무 당당하게 열차에 오른 나머지 이 열차가 정말 입국장으로 가는 것인지, 서울역에서 맡긴 내 짐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등 비행기에서 내린 인간이라면 당연히 한 번쯤은 걱정해봤을 법한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당당함은 오간데 없어지고 열차 안에서 사방을 두리번거리고서야 제대로 탄 것을 확인했다. 같은 일은 입국심사 장에서도 반복됐다. 오랜만에 해외여행을 온 나는 짐을 다른 곳에서 찾고 와서 입국 심사 후 나가는 것인지, 입국 심사 후 찾는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만약 전자라면 난 망한 것이 아닌가? 조용히 다른 한국 승객에게 ‘저.. 여기 나가서 짐 찾는 것이 맞죠?’라고 물어보니, ‘뭐 그런 걸 물어보나?’하는 표정이 잠시 스치더니 이내 친절하게 ‘아마 그럴겁니다.’란 대답이 돌아왔다. 안심이 됐다. 무뚝뚝한 입국 심사관에게 억지웃음으로 인사를 하고 짐을 찾으러 갔다. 동대문에서 산 싸구려 캐리어를 소고기 익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더 간절하게 기다렸다.
짐이 나왔다. 버스를 타러갔다. 버스 정류장은 공한 한 쪽 끝에 있었다. 정류장에가니 버스표 파는 창구가 세 곳이나 있었다. 그중 테르미니(Termini)가 가장 크게 적힌 곳에 갔다. 그곳에 가니 영화 미저리에 여주인공 같은 인상을 한 여자가 무서운 표정을 하고 앉아 있었다.
나 : “테르미니 가나요?”
직원 : “몇 명?”
나 : “하.. 한 명.. 어.. 얼만데?”
직원 : “5유로”
나 : “(돈을 내며) 몇 번 게이트에서 타?”
직원 : “5(five)”
나 : “가격 말고 게이트”
직원 : “(흥분하며) 5(FIVE)!!”
마지막에는 정말 칼이라도 들 기세였다. 표와 잔돈을 받고 겁에 질려 5번 게이트로 가는데 뒤에서 신혼부부로 보이는 한 한국인 관광객이 “이 차 테르미니 간데요?”라고 물어봤다. 난 조금 전의 수모는 잊고 베테랑 여행객인 냥 멋지게 “네”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살해 위협에서 막 벗어난 얼굴로 “그.. 그런가 봐요..”라고 말하고 후닥닥 차에 올랐다. 그 두 커플은 표 사는데 2분이 넘게 걸린 것 같았는데, 탈 때 표정을 보니 역시 살해 위협을 받았던 것이 분명했다. 차를 타고 가며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나와 같은 어리숙한 관광객이 일 년에도 수백만 명씩 몰려오는 곳이라고 생각하니 그 직원의 태도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난 어리숙한 여행객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역에 내려서 3분 거리의 숙소를 30분이나 헤맸다. 숙소에 들어와 짐을 풀고 샤워를 했다. 아까 버스표 살 때의 인상도 있고, 숙소를 찾아 헤맬 때 느낀 낮선 기분 때문에 밖으로 선 듯 나가지 못했다. 게스트 하우스에는 두 명의 일일 룸메이트가 있었는데, 방학을 맞아 여행을 다니는 한의대 학생들이라고 했다. 그들과 간단하게 여행 정보를 나누고 곧 깊은 잠에 들었다.
2015년 3월 8일(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