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
요사이 일베가 문제가 됐다. 아니 되고 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일베는 '일간베스트'의 약자로, 디씨인사이드에서도 '막장'인 사람들이 모여 만든 사이트라고만 들어서 알고 있다. 이 일베가 문제가 되는 것은 이들이 쓰는 글의 내용이다. 특정지역(호남)과 지역 사람의 비하, 여성과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증오, 노무현 전대통령을 비롯한 현 야권에 대한 조롱이 이들이 일베에서 표현하는 주된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최근 일베가 더 이슈가 된 일이 있었다. 모 대형 할인마트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희화하한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이것을 한 사람이 바로 '일베'의 회원이기 때문이다. 일베가 이슈가 되기 전부터 일베를 '일베충'으로 표현하던 온라인 세상에서는 이 때문에 난리가 났고, 평소 같으면 조용히 넘어갔을 듯하던 공중파에서도 이 사건은 비중있게 다뤄졌다.
거기에 마침 TV조선과 채널A에서 5.18을 왜곡하는 보도를 하였고, 일베가 여기에 동조하는 일도 벌어졌다. 종편의 5.18보도는 여롯의 뭇매를 맞았고, 일베는 노무현 전대통령의 희화화 사건과 더불어 더욱 주목받게 되었다. 이들에 대한 언론의 평가는 인터넷 상의 평가 - 이들을 벌레 같이 취급하는 '일베충'이라는 시각-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여론이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가자 이들 중 일부는 '표현의 자유'를 내세웠다.
그렇다면 과연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할까?
먼저 노무현 전대통령의 희화화 문제부터 시작해보자. 우리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아주 편하게 '쥐'로 표현하곤 했다. G20 정상회담을 앞두고 어떤 미술가가 이 전대통령을 쥐로 표현한 작품을 전시할 때, 정부에서 그 작가를 처벌하고자 할 때, 많은 사람은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며 이명박 정부를 비판했다. 한 사람의 인격을 쥐로 표현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인격모독일 수 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공인이었고, 자신이 정치적으로 희화화 되는 것을 감당해야 할 자리에 있었다. 외국에 사례를 봐도 정치인에 대해서는 거의 무제한에 가깝게 패러디와 희화화가 가능하다.
그리고 이 잣대는 노무현 전대통령에게도 꼭 같이 적용되어야 한다. 노 전대통령은 공인이었다. 그는 국정의 최고 책임자 였으며, 그가 했던 어떤 정책적 판단으로 인해 희화화 되고, 패러디가 되더라도 그것은 받아들여저야 한다. 노 전대통령은 임기 말에 '누군가 나를 욕해서 속이 시원하다면 그걸로 만족한다'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안다. 아마 그가 살아 있었다면 그 누구보다 자신을 패러디 한 사람의 처벌에 반대했을 것이다. 공인이 자신이 선택한 정치적 판단 때문에 희화화 되는 것은 공인으로서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권의 희생자라고는 하나 노 전대통령은 그 자살까지도 정치적 측면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그 판단 조차도 어느 정도는 패러디가 허용될 수밖에 없다(얼마전 마가렛 대처 수상이 죽었을 때, 일부의 영국 사람들을 그의 장례식을 최저가로 낙찰 하자 등의 발언을 했고, 심지어 그녀의 죽음을 축하하기도 한 것을 기억해보라).
지금도 야권 지지자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심심치 않게 닭에 비유하곤 한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인가?
하지만 5.18과 호남에 대한 차별 발언은 전 대통령의 희화화와는 다르다.
보통 서구 사회에서도 패러디가 허용되지 않는 장르가 있다. 바로 인종과 성 차별에 대한 것이다.
인종과 성과 같이 불특정 다수에 대한 증오와 차별로 인한 희화화는 그 자체로 어떤 나라에서는 인종차별 범죄에 해당 할 수 있다. 사람이 태어나면서 결정할 수 없었던 것들, 즉 국적, 성별, 인종, 장애와 같은 것은 그 어떤 이유로도 차별되어서는 안되고, 희화화 되어서도 안된다. 일베의 호남(혹은 호남인) 비하가 표현의 자유에서 벗어나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5.18 광주시민에 대한 모욕은 이보다 더 하다. 그들은 광주 시민들을 '홍어'로 표현하는 것으로 모자라 희생자가 담겨 있는 관을 붙들고 울부짖는 어머니가 있는 사진을 '홍어 택배를 보내는 어머니'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는 그들이 5.18을 민주화운동이라고 인정하지 않더라도 해서는 안되는 수준이다. 인간의 생명과 죽음에 대한 희화화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부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