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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사형제에 반대한다.

beatles 2009. 3. 3. 19:31

연쇄 살해범 강호순 열풍으로 사형제 존치와 사형 집행에 대한 여론이 뜨겁다.
그런 흉악범은 사회에 필요가 없으며 죽여 마땅하다는 것이 그러한 여론의 핵심이다.
사형제를 대체할 ‘절대적 종신형’은 ‘그런 놈들 밥 먹이려고 세금 내는 것 아니’라는 논리로 반대한다.

  물론 난 여기서 강호순을 변론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
가 흉악범이라는 것에도 동감한다.
다만 사형제는 그 자체로 문제점을 안고 있기 때문에 폐지되어야 함을 주장하려 한다.

  사형은 되돌릴 수 없는 형벌이다.
인간의 생명은 죽으면 그것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판은 인간이 하는 것이고 언제나 오심의 가능성은 있다.
강호순처럼 거의 명백하게 사람을 죽인 증거를 갖고 사형을 언도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도 사형을 언도 받을 가능성은 사형제가 존재하는 한 언제든 남아 있다.

  사형은 정치적으로도 악용될 수 있다.
이승만은 자신의 정치적 라이벌인 조봉암을 사형이란 제도로 제거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전두환 정권에 의해 사형을 언도 받았다(물론 그의 경우는 국제 여론 등을 통해 사면되긴 했다).
인혁당 사건에 관련된 사람은 판결 바로 다음날 사형이 집행됐다. 이것은 아직도 ‘사법 살인’의 대표적인 사례로 남아 있다.
사형이란 제도가 존재하는 한 이러한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불과 20여년 전의 일이다.

  혹자들은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다시 저런 일이 벌어지겠냐 하지만, 철거민 몇 명 죽이고 여론 조작을 ‘사소한 일’정도로 치부하는 이때에 저런 일들이 다시 생겨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국가보안법과 비교를 해보자. 단순 비교는 되지 않을지 모른다.
국가보안법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 법이다.
‘심증’만 갖고도 처벌할 수 있는 법이다.
물론 지금은 그 적용이 엄격해 져서 국가보안법으로 처벌 받는 사람의 수는 매우 적어졌지만,
최근에 다시 이 법을 근거로 ‘기소’하는 사례들이 생기고 있다.  
현재의 사형의 언도 역시 매우 엄격하게 이루어지지만 그 역시 시대에 따라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
종신형 등의 형벌이라면 후에 충분하진 않겠지만 보상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사형은 그 특성상 한 번 집행되면 보상할 길(본인에게)이 없다.  

  이렇게 문제를 내포하는 제도는 수정 혹은 폐지되어야 마땅한 것이 아닌가?
어떤 사람들은 완벽한 제도는 없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 생명을 담보로 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흉악범을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시키는 것이 목적이라면 ‘절대적 종신형’으로도 충분하다.
여기서 앞에서 말한 ‘밥 값도 아깝다’라는 식의 반응이 나온다.
그러나 우리는 살인마가 아니더라도 많은 흉악범을 먹이고 재워가며 사회에서 격리시키고 있다
(그것은 현행의 형벌제도가 복수가 아니라 교화에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직 사형제만이 ‘복수’를 위한 형벌이다).

  마지막으로 사형집행은 정치적으로 어려울 때 여론 환기용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
오늘 법무부가 사형집행을 검토하고 있다는 말을 하는데
이를 낮은 지지율을 높은 사형집행이란 여론의 호응을 타고 지지율을 올리려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나의 기우일까.


추신:
난 대중이 건강한 판단을 할 수 있다고 믿지만 가끔은 회의도 든다.
엠네스티가 촛불 집회 때 정부에 과잉진압에 대해서 지적했을 때, 여론은 그들의 정당성을 지지했다.
이번에 사형집행을 반대하자, 이번에 여론은 내정 간섭하지 말라는 반응을 보였다.

물론 내가 느끼는 여론이 실제의 여론과 차이가 있을 수 있고, 전자와 후자의 여론을 주도하는 세력이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한쪽이 분위기를 타고 지지를 얻는다고 다른 한쪽은 입도 뻥끗하지 못하는 듯한 분위기나,
분위기에 휩쓸려 여론에 편승하는 듯한 모습들은 대중에 대한 믿음에 회의를 갖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