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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cal Mystery Tour

이탈리아 4개 도시 여행기_베네치아_둘째 날_하룻 밤의 인연

 

여행을 오기 전 부탁 받은 것이 있었다. 냉장고에 붙이는 자석 장식, 이탈리아 가면, 그리고 와인 등등. 냉장고에 붙이는 자석은 나폴리에서 샀다. 가면도 그곳에서 샀어야 했는데, 그땐 나폴리 물가가 이탈리아 북부에 비해 싸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 때였다. 뭐 아무튼, 저녁도 먹고 식사도 할 겸 다시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갔다. 한 스테이크 집에 갔는데, 막상 들어가고 나니 그냥 한국의 패밀리 레스토랑 같은 느낌이었다. ‘아 괜히 들어왔다.’ 싶었지만 뭐 특별히 아는 곳도 없고 해서 그냥 앉아 스테이크를 하나 시켰는데 맛이 형편없었다. 비슷한 가격의 피렌체 식당 스테이크가 그리워 졌다. 뭐 어찌 됐건 대충 먹고 나와 마트로 갔다. 그곳에서 부탁받은 와인을 찾았다. 대부분의 와인이 10~20유로 사이였고, 20유로가 넘는 와인은 도난을 방지하는 장치가 붙어있었다. 내가 부탁받은 와인은 30유로가 넘었으니, 꽤 고가였다. 각각 다른 사람에게 한 병씩, 두 병을 부탁받았고, 내가 숙소에서 마실 와인까자 샀으니 거금 80유로 가까이를 쓰고(여행이 막바지가 되니 큰돈이다) 마트를 나왔다. 계속 걸어 다리가 아파, 다시 바포라토를 타고 가기로 했다. 72시간 동안은 알차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더럽게 맛이 없던 스테이크.. 베네치아 이놈들..

 

바포라토를 타고 멍 하니 풍경을 보며 가는 데, 앞에 두 동양인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20대 중반이고 한국인들로 보였다. 혼자 하는 긴 여행에 지친 터여서 한국 사람이면 말이라도 걸어볼 심산이었는데, 대화하는 것을 들어보니 한국 사람들이 맞았다. 그리고 마침 내리는 곳도 같았다. 내 숙소가 산마르코 광장 옆에 있는 것이 새삼 감사했다. 난 말을 걸었다.

 

: . 한국 분이시죠?

1 : ~ ! 한국 분이시네요.

: ~ 반갑습니다.

1: . 저도 반가워요.

: ~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시고요, 제가 혼자 여행 중인데 열흘 넘게 혼자 다니다 보니 너무 심심해서 말 걸어 봤어요.

2 : ~ 저희도 혼자 여행 다니다 어제 만난 사이에요.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 다행이네요~ 산마르코 광장 보러 오신 건가요?

1 : ~

: 제가 마침 와인을 좀 사 놓은 것이 있는데 같이 마실래요?

2: 그래도 되나요?

: 물론이죠. 어차피 마실라고 산 와인이고 저도 같이 마시면 좋죠~

1 : 그런데 컵 이런 건 어디서 구하죠?

: 제가 여자 한 분이면 절대 이런 얘기 못할 텐데, 두 분이니까.. 제 방에 와인잔하고 다 있거든요. 실례가 안 된다면 제 방 가서 드시죠? 바로 이 앞에 있는 호텔이에요. 정 불편하시면 그냥 종이컵 같은 걸 구해 보죠.

1,2 : 아니에요~ 안에서 먹죠 뭐~ 괜찮습니다.

 

결국 셋은 호텔로 들어갔다. 20대 중반 정도 나이에 여행자에게 내가 묵은 숙소는 낮선 공간이었다. 하긴 묵고 있는 나에게도 익숙한 공간은 아니었으니. 방 키를 받아들고 방으로 갔다. 지금까지 쓸모없는 물건이라고 생각했던 와인 따개와 와인잔이 세상에서 가장 유용한 도구로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한 사람은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하는 중이라고 했고, 다른 한 사람은 대학을 졸업하고 연극배우를 하려고 준비한다고 했다. 둘은 동갑이었고 나보다 10살 어렸으며, 언급한 것처럼 어제 만난 사이였다. 여행지라는 이색적인 공간에서 술까지 한 잔 마시니 10년은 만난 사람인 듯 별 이야기를 다 하게 됐다. 미래에 대한 고민, 연인과의 관계, 직장 문제 등등. 둘은 내일 모두 떠난다고 했다. 한명은 스위스로 간다고 했고, 다른 한명은 파리로 간다고 했다. 그들에게 지금은 이탈리아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그래서 밤에 산마르코 광장을 보러 나온 것이고... 와인 두 병을 비우고 나서 다시 밖으로 나왔다. 산마르코 광장의 밤은 생각보다 차분했다. 같이 사진도 찍고, 남은 수다도 떨고 그랬는데, 그 이후에 다시 보지는 못했으니 그 사진은 받지 못했다. 뭐 아무튼 유쾌한 시간이었다. 그들과 헤어지고 다시 숙소로 들어오니 꿈을 꾼 듯했다. 다시 생각하니 만나서 헤어질 때까지 뭔가 그리 현실성은 없어보였다. 아니 여행은 이틀 남았지만 이것이 여행의 마지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그날은 꿈을 꾸지 않았다



한 밤의 산마르코 광장. 카페 플로리안의 저녁 연주까지 끝난 광장은 한적함을 넘어 고요하기까지 하다. 연인들에겐 최고의 공간 같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