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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cal Mystery Tour

이탈리아 4개 도시 여행기_로마_둘째 날_바티칸 미술관_Part 1

늦잠을 잤다. 일어나니 730분이었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에게 자기 전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바티칸 박물관은 아침 일찍 가야 줄을 그나마 덜 서고 입장할 수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730분에는 숙소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급한 마음에 세수하고 머리에 물만 뭍이고 숙소에서 제공하는 빵 몇 개를 들고 지하철을 탔다.

 

출근시간이 다가와서인지 지하철은 사람들로 붐볐는데, 어제 지하철을 타고 느낀 것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로마 시민들을 경계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또 다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지하철역에서 나와 어디로 가야하는지 살펴보는데, 한 무리에 한국인들이 보였다. 아마 바티칸 미술관 투어를 하는 팀으로 보였다. 오기 전 많은 사람들이 바티칸 미술관은 꼭 투어를 신청하라고 추천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수용하려고 하다가, 결국 하지 않았다. 그냥 어차피 혼자 가기로 한 여행, 내 마음대로 보고 싶은 것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미술관으로 향하는데 어떤 북아프리카계의 무엇을 파는 남성이 나에게 두 길 가운데 어느 쪽으로 갈지를 알려줬다. 어제 그 사기꾼 때문에 길거리 상인들에 대한 경계가 극심한 나였지만, 그가 알려준 곳이 맞았다. 친절을 친절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까웠다.

 

줄은 이미 100미터 가까이 늘어졌다. 그리고 그중 50미터는 한국 사람들인 듯했다. 그곳에서 가져온 물과 빵을 서서 먹었다. 벌써 이틀째 인간다운 식사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시간이 되고 입장이 시작됐다. 생각보다 빨리 입장을 했다. 바티칸 박물관은 바티칸 시국(市國)에 소속되어 있는데, 그래서는 아니겠지만 입국심사 하듯 까다로운 짐 검사를 하고야 표를 사고 입장할 수 있었다.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도 있어 그것도 빌렸다.

 

처음 마주한 곳은 이집트 관이었다. 왜 로마 교황들이 이교도인 이집트 문명에까지 관심을 가졌는지, 오디오 가이드는 친절하게 설명해줬다(하지만 그때 뭘 적어 놓지 않으니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미라부터 시작해서, 잘 빠진(?) 조각상과 상형문자 판, 심지어 복원하는 과정(그냥 과정이 아니라, 현재 사람이 직접 복원하고 있는 모습 자체)까지 다양하게 전시해 놨다. 이집트관에 있는 유물은 최소 수 천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럼에도 매우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이제는 세계 4대문명이런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집트인들의 그 오래된 문명이 그 지역 사회에 큰영향을 주었을 것을 생각하니 괜한 경의가 느껴졌다.


수천년 전의 이집트 조각


관의 채색 작업을 하던 모습(저 분은 공개적인 곳에서 채색 복원을 하고 있는 진짜 사람임..)


오래 서서 기다렸는지 몰라도 이집트관만 봤을 뿐인데 다리가 아파왔다. 팔각정원(이라고 이름이 기억되는 곳)에 가니 햇살이 따뜻하기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역시 로마의 날씨는 따사로웠다. 그런데 막상 쉬려고 앉으니 주변에 온통 어마어마한 예술작품들이었다. 당장 눈에 들어오는 것이 그 어마어마한 라오콘 군상이었다. 1506년 율리오 2세는 로마의 한 언덕에서 아름다운 조각상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곳은 로마제국시절 황제의 목욕탕과 정원이 있던 곳이었다. 이 조각이 바로 라오콘 군상이었다. 라오콘은 그리스 신화의 인물로, 트로이 목마와 관련이 있다. 트로이의 신관이었던 라오콘은 목마를 성 안으로 들여 놓으면 안 된다고 경고하지만, 그리스편이었던 신들은 라오콘을 방해하고자 큰 뱀 두 마리를 보내 라오콘과 그의 두 아들을 죽인다. 라오콘 군상은 바로 그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 고통에 일그러진 라오콘의 얼굴과 겁에 질린 두 아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걸작이다. 거기에 신체의 세부적인 묘사까지 보고 있자면 미켈란젤로 등 수 많은 르네상스 조각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않아도 이 작품이 얼마나 명작인지를 쉽게 알 수 있다. 난 이 작품을 여러 각도에서 촬영하고 또 지켜봤다. 더 보고 싶었지만 한 무리의 단체 관람객들이 몰려왔다. 이 작품은 인류 모두의 것이라는 세계시민적인 생각으로 자리를 비켜주고 싶었지만, ‘망할이라는 생각이 앞섰다는 것을 부인하진 않겠다.


힘들게 찾은 자신의 오른팔을 장착(!?)한 라오콘 군상..

라오콘의 표정과 근육의 묘사 등은 정말 대단하다는 말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다시 실내로 들어갔다. 엄청난 조각들이 계속 전시되어 있었다. 그 조각을 지키는 사람도 없었고, 따로 경비시스템이 갖춰진 것 같지도 않았다. ‘.. 이래도 되나?’란 생각이 들 정도로 경비는 허술해 보였다. 각 전시실마다 한 사람씩 앉아서 감시를 하긴 했지만, 그것만으로 그 수많은 사람들을 살피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였다. 하지만 아무도 조각을 만지거나, 만지려고 하지 않았다. 나를 포함하여 서로 최소한의 시민의식 정도는 지키는 것 같다는 쓸데없는 자부심 같은 것이 들어 괜히 혼자 뿌듯해하다 민망해졌다.

 

박물관에서 2년 정도 일해 본 경험이 있지만 생각보다 한국 사람들은 상식을 잘 지킨다. 관람을 위해 선을 바닥에 그어 놓으면 거의 넘지 않고, ‘만지지마세요를 써 놓으면 만지지 않는다. 문제는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다. 천방지축, 지옥불 속에라도 있는 것처럼 쉬지 않고 뛰어 다니는 호기심과 장난기 가득한 아이들의 눈을 보고 있자면, 눈을 마주치는 그 순간부터 힘이 빠진다. 가끔은 아이들은 아이들을 위한 박물관에만 보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아무튼 유럽의 아이들이라고 한국의 아이들과 별반 다를 것 없을 것인데, 그들은 저 아이들의 순진한 눈빛에 대해 어떤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는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이 그리 많이 보이지 않았고, 단체로 온 것으로 보인, 햇님반, 달님반 아이들은 선생님의 철저한 감시 속에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남의 나라 문화재 걱정에 빠져 길을 걷다 문득 앞을 보니 사람이 웅성웅성 모여 있었다. ‘뭔데, 뭔데?’ 이러면서 나도, 나도이래가며 모여 있는 사람의 무리를 헤치고 나니 엄청난 몸뚱아리 조각이 하나 놓여있었다. 바로 벨베데레의 토르소. 토르소(Torso)는 몸에서 머리 팔 어깨 손 다리를 제외한 부분을 일컫는 것인데, 벨베데레의 토르소는 원래 몸만 있던 것은 당연히 아니고 모두 파괴되고 몸과 허벅지만 남았기 때문에 토르소라고 불린다. 이 팔다리 머리 다 짤린 조각상에 왜 사람이 모여 있을까 생각하며 작품을 봤는데, 과연 미켈란젤로가 직접 만져보며 영감을 얻었다고 할 정도의 명작이었다. 몸의 근육하나하나가 아주 세밀하고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이 토르소의 모습은 훗날 미켈란젤로의 걸작 천지창조 인물의 모습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전한다.


벨베데레의 토르소, 비록 많은 부분이 유실 됐지만 남아 있는 모습만으로도 생동감이 느껴질 정도이다. 


벨베데레의 토르소를 지나도 계속 엄청난 작품들이 나온다. 일일이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눈이 호강한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엄청난 작품들이 흔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우구스투스의 조각상, 헤라클레스 청동상, 아프로디테 조각상 등등을 지나가며관람했다. 처음에는 조금 자세히도 보고 그랬는데, 그랬다간 오늘 안에 다른 곳은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로마에서의 일정을 이리 짧게 잡았는가..’라고 내 스스로에게 원망을 하면서 그냥 슥슥 지나갔다.




이 밑으로는 흔하게 널려(!?)있는 조각상 일부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