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말까지 정말 먹고 자는 시간 이외에는 씻을 시간도 아깝다고 생각될 정도로 책상 앞에만 앉아 있었다. 그 사이 46명의
젊은이들이 죽어갔고, 또 그를 구하기 위해 10명의 사람이 희생됐으며, 삼성전자에서 일하던 20대 젊은이 하나도 백혈병으로
죽었다. 뭐 하지만 죽음에도 값을 책정해 놓은 듯 앞의 죽음은 언론에서 각종 예능프로를 결방시키며 부각되었고, 그 다음의 죽음은
앞의 죽음에 종속되어 이야기 되었으며, 맨 마지막 죽음은 일부 언론에서만 보도되었다. 이런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할 말이
많았지만, 사는게 바빠 할말도 제대로 못하고 오늘까지 왔다.
사실 이 세 사건의 죽음은 모두 사회적으로 일정한 메세지를 던진다. 천안함 사고는, 결국 군대에서 죽으면 개죽음이란 것을 다시한번
각인시켰다. 희생자 중에 소위 힘있고 빽있는 자들의 자제들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힘있고 빽도 있는 자들은 힘없는
자들의 죽음에 대해 상당히 많은 부분을 숨겼다. 없다던 동영상이 나오고, 논리적 개연성은 별로 없지만 어뢰로 몰아갔고, 증거도
없지만 일단 '북'의 소행이라고 한다. 뭐 북이 그랬을 가능성도 있으니, 북의 연관성을 가능성의 하나로 검토하는 것은 얼마든
가능한 일이다. 다만 이놈의 땅은 북핵을 갖고도 6자가 모여서 회담을 해야하는 민감한 곳이기 때문에, 결정적 증거없이 함부로
'북'의 소행으로 단정짓는 것은 6자 전체의 외교 문제로 번질 공산이 크다. 그럼에도 이렇게 북으로 몰아가는 것은 아마도
6.2지방 선거에 대한 노림수라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다(물론 개인적인 생각이다~).
한편 금양호 선원들의 죽음은, 국가가 개인을 동원해 놓고 그 죽음에는 별로 책임지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 주목된다. 물론
언론도 마찬가지이고. 천안함의 희생자들은 그 죽음이 안타깝긴 하지만, 그들이 영웅은 아니다. 정말 영웅은 자신들에게 별로 이득될
것이 없지만 수색에 나갔다 명을 달리한 금양호 선원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죽음은 천안함 사건에 종속된 죽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고, 국가도 언론도 그렇게 취급했다. 이것은 언젠가 우리가 국가에 동원이 되어, 혹은 자발적으로 국가를 위하다 죽음을
당해도, 우리의 죽음이 딱 이것만큼 취급될 것이라는 걸 의미한다. 혹여 그 죽음이 어떤 정치적 특수성을 갖지 않은 한에서 아마도
이것이 최대치일 것이다.
다음으론 삼성전자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죽은 박지연씨 사건이다. 이건 언론에서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삼정전자에 특정 생산라인의
노동자들이 백혈병에 자주 걸렸고, 그중 한 사람인 박지연씨는 23살의 나이로 죽었다. 하지만 삼성도, 국가도 사회도 여기에는
모두 무심하다. 그런데 사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겐 이것도 상당히 와 닿아야만 하는 사건이다. 우리 대부분이 노동을 팔고 월급을
받는 임노동자인 상황에서, 자본이 노동자를 취급하는 방식이 너무나 적날하게 들어났기 때문이다. 돈 주는 만큼 써 먹지만, 필요
없어지면 버린다. 이게 당연할 수도 있지만, 그 안에는 인간에 대한 배려는 눈꼽만큼도 없다. 최소한 노동자들이 일하는 환경과
조건은 만들어 주고 노동을 팔게 해줘야 하는 것이 사용자들의 의무이고, 그 노동 현장의 문제로 노동자가 병이 걸렸으면 책임을 지는
것이 사용자의 의무이다. 그런데 이 사회에서는 이것을 무조건 '우리 책임이 아니다'라고 해도 용납되고, 언론도, 사회도 이것을
문제 삼지 않는다.
과연 우리는 이 세가지 죽음 중 어디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훗날 내 자식이 군대를 간다면, 우리는 첫 번째 죽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건강히 제대하는 그날까지 노심초사 해야하겠지. 내 주변에서 불의한 일이 생겼을 때, 난 얼만큼 정의로워 질 수 있는가?
혹은 내가 불의한 일을 당했을 때, 주변에 얼마나 나에게 도움을 줄 정의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두 번째 죽음이 던지는 것은
이러한 메시지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일하는 동안, 난 얼마나 인간다운 대접을 받는가? 사용자에 입장에서 난 인간이 아니라 돈
벌어주는 기구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그리고 이러한 사회는 내 자식 대까지 이어지는 것은 아닌가? 이것이 마지막 죽음이 주는
메시지일 것이다.
사족을 붙인다. 물론 난 저러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와중에도 자리에 앉아 독립촉성중앙협의회, 민주주의민족전선 등 사소한 단어들과
씨름했고, 조선 전기의 노비제에서 종모법과 종부법 그리고 그것들과 보충군이 어떠한 관계 속에 있었는지에 대해 찾고 있었으며, 신라
경문왕의 가문과 성골의식에 대해 고민했다.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 한성백제에 대한 자료를 조사했다. 앞선 고민은 그냥 언듯 언듯
머리를 스쳐지나갈 뿐이었다. 그런데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사는게 바쁘다는 아주 현실적이고 직면한 문제는 훌륭한 변명꺼리였지만
말이다. 5월도 어느 덧 중순에 접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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